[후일담]‘날으는 작은새’들의 올림픽 구기 첫 동메달

황규인 기자 입력 2017-07-31 11:37수정 2017-08-0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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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그랑프리 국제여자배구대회 2그룹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거든요. 한국은 31일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대회 2그룹 결승전에서 폴란드에 0-3으로 완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정말 선수들, 고생 많았습니다.

2017 월드그랑프리 2그룹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 FIVB 홈페이지.
원래 해마다 7월 31일은 한국 여자 배구 역사에 의미가 깊은 날입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동메달을 목에 건 날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올림픽 구기 종목에서 메달을 딴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 동아일보DB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한국 여자 배구 에이스는 이제 ‘여사님’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조혜정(64)이었습니다. 그는 키 163.5㎝로 현대 배구에서는 세터라고 해도 ‘작다’는 평가를 받는 수준밖에 안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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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조혜정은 180㎝가 넘는 상대 ‘블로킹 숲’을 뚫고 강스파이크를 날렸습니다. 그래서 외신 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이 ‘날으는 작은 새(flying little bird)’. (맞춤법으로는 ‘나는 작은 새’가 맞지만 때론 일부러 맞춤법을 틀려야 할 때도 있는 법.)

‘날으는 작은 새’ 조혜정(왼쪽). 동아일보DB
그렇게 잘 나가던 한국 대표팀에 날벼락이 떨어집니다. 조혜정이 쿠바를 상대한 조별리그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다리를 다치고 만 것. 의사는 “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얼음찜질을 하며 아쉬움을 삼키던 조혜정의 눈에 대표팀 막내 백명선(61)이 보였습니다. 조혜정은 백명선에게 ‘메달 따서 연금 받게 되면 뭐 할 거냐’고 지나가듯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언니, 저 동생 여섯 명이에요. 제가 학비를 대야 해요.”

백미선과 부둥켜 안고 한참 눈물을 흘린 조혜정은 ‘숙적’ 일본과 맞붙은 준결승전에 출전했지만 부상을 극복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점프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었던 조혜정은 1세트만 뛰고 경기에서 빠졌습니다. 결국 한국은 일본에 0-3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렇게 동메달을 놓고 결전을 치르게 된 3, 4위전 상대는 헝가리. 한국은 이 경기에서 3-1 역전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이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기사에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온 선수도 동생들 학비를 책임져야 했던 백명선, 이름이 제일 많이(3번) 나온 선수도 백명선이었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 배구 동메달 소식을 전한 1976년 7월 31일자 동아일보
이제 대한민국은 여자 배구 대표팀 절반에게만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게 한다고 팬들이 들고 일어서는 나라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촌스러워 보이기까지하는 이런 스토리가 없었다면 한국이 그리고 한국 배구가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올드 배구 팬이라면 잘 아실 것처럼 그 후 조혜정은 1979년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면서 한국 여자 배구 1호 해외 진출 선수가 됐습니다. 2010년에는 프로배구 여자부 GS칼텍스 감독을 맡아 한국 4대 프로 스포츠 첫 번째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남겼죠. 지금까지도 프로 골퍼 조윤희(35)와 조윤지(26)의 엄마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조혜정 전 감독(오른쪽) 가족. 왼쪽부터 남편 조창수 전 프로야구 삼성 감독대행, 딸 윤지, 윤희.
혹시 백명선 ‘여사님’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아시는 분 계시나요? 아니, 정확하게는 동생 분들 소식이 궁금하네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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