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여 감독 “북한선수들 얼굴부터 특징까지 싹 외웠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19일 05시 45분


최근 평양에서 끝난 2018 요르단 여자아시안컵 B조 예선을 1위로 통과하고 금의환향한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이 17일 ‘2017년 축구인골프대회’가 열린 경기도 여주 솔모로CC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여주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최근 평양에서 끝난 2018 요르단 여자아시안컵 B조 예선을 1위로 통과하고 금의환향한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이 17일 ‘2017년 축구인골프대회’가 열린 경기도 여주 솔모로CC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여주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윤덕여 감독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홈 텃세? 추가시간 7분은 너무 길지 않나
선수들 기대한 옥류관 냉면 결국 못 먹어
북한감독 ‘너희 좋아졌다’ 칭찬 건네기도


이달 초만 해도 알아보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오랜 축구팬이 아니라면 선한 미소의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56) 감독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지금은 180도 상황이 변했다. 역사적인 평양 원정에서 당당히 싸우고, 내년 4월 요르단에서 열릴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아시안컵 본선 출전권을 따낸 덕분이다.

윤 감독과 만난 1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도 함께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아빠 리더십’으로 한국여자축구를 성장시킨 윤 감독은 졸전과 망언을 거듭하고 있는 남자대표팀 울리 슈틸리케(63·독일) 감독과 큰 차이가 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역시 겸손했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나를 칭찬하기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우리 선수들을 계속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북한축구와 인연이 꽤 깊다.

“정말 흥미롭다. 선수로, 감독으로 그 어려운 곳을 찾았으니. 솔직히 현역 때는 (남북)화해무드라 그런지 호기심이 승부욕보다 컸다. 이번에는 달랐다. 부담이 정말 컸다. 수년의 공백을 피하려면 북한을 넘어야 했다. 우리 선수들의 부담을 줄여주려 했는데, 그게 쉽나. 중압감이 대단했을 것이다.”

윤 감독은 1990년 10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통일축구를 치렀다.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평양시민의 모습에 섬뜩함도 느꼈지만 환대 분위기였다. 올해는 달랐다. 경색국면인 남북관계에다 누군가는 좌절해야 할 진짜 승부였다. 결국 우리가 이겼다. 윤 감독이 취임한 이후 5차례 대결에서 여전히 2무3패로 열세지만, 이번에는 활짝 웃었다.

-3월 키프로스 국제대회에서 자신감을 찾았다고 했는데.

“당시 북한은 절반 이상 물갈이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팀(스위스)과 실전을 치렀다. 북한은 조별리그, 우리는 결승에서 만나 나란히 0-1로 졌다. 간접 비교를 할 수 있었다. 측면이 약했다. 20세 대표팀(북한)에서 올라온 새 얼굴의 실력도 좋았지만, 성인 레벨은 또 다르다. 기존 베테랑들이 많이 은퇴한 결과다. 북한 김광민 감독이 최근 은퇴한 선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더라. (골키퍼) 홍명희도 이 과정을 통해 다시 북한대표로 합류했다. 더욱이 우리 선수들이 최근 북한과 자주 만나 내성이 생겼다. 경기력이 올라오면서 격차가 줄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북한의 홈 텃세는 없었는지.

“딱히 우리를 견제하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숙소(양각도호텔)도 고급스러웠고, 음식도 나름 괜찮았다. 반면 다른 출전국들의 불평이 많았다. 굳이 찾는다면 볼보이가 공을 너무 늦게 건넨다는 정도? 아, 남북대결 후반 추가시간이 7분이나 됐다. 너무 길지 않나(웃음)?”

-선수단의 이미지 트레이닝이 남달랐다.

“정말 싹 외웠다. 북한선수의 얼굴과 특징까지 머릿속에 입력했다. 코칭스태프가 수시로 점검했다. 심리적 안정도 중요했다. 북한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단어를 놓고 선수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미사일, 핵무기, 김정은, 냉면 등이 나왔다. 여자대표팀과 국제대회에 종종 동행하며 많은 도움을 준 윤영길 박사(한체대)가 ‘때가 됐다’를 주제로 좋은 이야기를 했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지웠다.”

우문을 던졌다. ‘만약 졌다면 어떻게 했을지’를 물었다. 윤 감독은 주저 없이 “단 한 번도 진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지는 경기, 비기는 경기를 준비한 적도 없다”고 단언했다. 대한축구협회는 6월 계약이 만료되는 윤 감독과 재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한 결정이다. 2019년 월드컵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협회 고위관계자는 “감독을 바꿀 이유가 있느냐”는 짤막한 말로 계약연장 추진을 시사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아시안컵 본선 확정 순간을 되돌린다면?

“마지막 우즈베키스탄전을 앞두고 신신당부했다. 1골차로 이기면 페어플레이(경고·퇴장 등) 포인트로 운명이 바뀔 수 있어 카드를 받지 말자고 주지시켰다. 전반 막판에야 첫 골을 뽑은 답답한 홍콩전(6-0 승)과 달리, 우즈베키스탄전은 매끄럽게 풀렸다. 당초 조커로 기용하려고 평양 원정에 동행시킨 (전)가을이가 프리킥, 코너킥으로만 어시스트 3개를 했다. 잘 풀리려니까 모든 부분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고대한 옥류관 냉면을 먹지 못했다.

“선수들도 전부 기대가 컸다. 대회가 끝나고 출국에 앞서 점심식사로 옥류관 냉면을 먹으려 했다. 그런데 당일 갑자기 ‘영업하지 않는다’고 통보하더라. 그래도 양각도호텔 냉면도 나름 괜찮았다. 아쉽긴 해도 상대방 입장이 있으니. 김(광민) 감독이 남북대결 직후 칭찬을 많이 해줬다. ‘너희 정말 좋아졌다’고. 그 짧은 대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분간 국제대회가 없는 만큼 윤 감독은 한동안 ‘반 백수’ 신세다. 그래도 쉴 틈은 없다. WK리그를 매주 찾아 대표팀 취약 포지션의 대안도 찾아야 한다. 일단 당장의 세대교체는 미뤘다. 안정과 내실이 최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가능하다면, 몸만 괜찮다면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10월에는 미국과 원정 평가전을 치른다. 내년 4월 여자아시안컵에서 5위 안에 들면 사상 첫 2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출전할 수 있다.

● 윤덕여 감독

▲생년월일=1961년 3월 25일
▲출신교=경신중∼경신고∼성균관대
▲프로선수 경력=울산현대(1986∼1991년), 포항 스틸러스(1992년)
▲지도자 경력=포항제철중 감독(1993∼1995년),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1996∼1999년), 17세 이하(U-17) 대표팀 감독(2001∼2003년), 울산현대 코치(2004∼2005년), 경남FC 수석코치(2006∼2009년), 대전 시티즌 수석코치(2010년), 전남 드래곤즈 수석코치(2012년), 여자국가대표팀 감독(2013년∼현재)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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