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골퍼 이정은, 우승 후 흘린 눈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10일 05시 45분


이정은. 사진제공|KLPGA
이정은. 사진제공|KLPGA
■ KLPGA 롯데렌터카오픈 198타 첫 승

매경기 휠체어 타고 지켜보던 아버지 못와
이정은 “상금은 모두 부모님에게 드리겠다”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지난해부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가 열리는 대회장에선 한 부녀가 눈길을 끌었다. 신인 이정은(21)과 그의 부친 이정호(53) 씨는 어딜 가도 쉽게 눈에 띄었다. 부친은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꼬박꼬박 경기장에 나왔다. 심지어 불편한 몸으로 장애인용 승용차를 타고 외동딸을 골프장까지 바래다주는 등 누구보다 열성적인 ‘골프대디’였다.

이정은은 그런 아버지에게 우승트로피를 안겨주는 꿈을 꾸며 투어 무대를 누볐다. 아쉽게도 지난해에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정은이 큼지막한 우승트로피를 들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이정은은 9일 제주 서귀포 롯데스카이힐골프장(파72)에서 열린 2017시즌 KLPGA 투어 국내 개막전 롯데렌터카여자오픈(총상금 6억원) 마지막 날 버디 7개, 보기 1개로 6언더파 66타를 쳤다. 사흘 내내 6타씩을 줄여 합계 18언더파 198 타를 친 이정은은 박성원(24·14언더파 202타)을 4타차로 제치고 우승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우승의 기쁨은 컸지만, 이정은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늘 곁에서 자신의 경기를 지켜보던 아버지가 이날은 골프장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탁구선수로 활동하던 부친은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그만뒀다가 올해 다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대회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이번에 오지 못해 딸의 첫 우승 장면을 보지 못했다.

이정은. 사진제공|KLPGA
이정은. 사진제공|KLPGA

부친은 딸이 네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의 지체장애인이 됐다.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형편은 그로 인해 더 어려워졌고, 이정은은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프로골퍼의 꿈을 키웠다. 고생하며 키운 딸은 뒤늦게 골프를 배웠지만, 유망주로 성장했다. 고교 시절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2015년 프로로 전향한 뒤에는 준회원부터 정규투어 입성까지 한 번에 이뤄냈다. 지난해 데뷔해서는 28경기에 출전해 7차례 톱10에 진입하는 등 상금랭킹 24위(2억5765만1211원)를 기록하며 생애 단 한 번뿐인 신인상을 차지했다.

아쉬움이라면 우승 없이 신인왕에 올라 ‘무관의 신인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었다.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듣기 좋은 말도 아니었다. 다행히 설움을 씻어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새 시즌 개막 후 3경기 만에 우승을 신고하며 신인왕이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고운 심성 덕분에 이정은은 ‘효녀골퍼’로 통한다. 지난해 받은 상금으로는 아버지에게 전동 휠체어를 사드렸고, 경기도 용인에 전셋집도 마련했다. 이번 대회에선 우승으로 1억20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정은은 “상금은 모두 부모님께 드리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정은에 이어 신인왕 랭킹 2위에 올랐던 이소영(20)은 3위(13언더파 203타)에 올랐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휴식기를 이용해 국내대회에 나온 김효주(21)는 공동 4위(10 언더파 206타), 장하나(25)는 공동 7위(9언더파 207타)로 대회를 마쳤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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