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심판 향한 공, 포수가 일부러 잡지 않았다면 ‘폭행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3일 05시 45분


꼭 해야할 행동 하지 않은 ‘부작위범’
‘야구공=위험한 물건’ 가중처벌될 것

야구는 구기종목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게임 구조를 갖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구기종목은 공격팀이 경기의 주도권을 쥔다. 축구, 농구, 배구, 탁구, 테니스 등이 그렇다. 반면 야구는 수비팀이 상당 부분 주도권을 지닌다. 그 이유는 뭘까? 바로 공격팀이 아닌 수비팀에 볼의 소유권이 있기 때문이다. 야구는 투수의 투구로부터 경기가 시작돼 대부분의 볼 소유권을 수비팀이 보유한다. 공격팀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때는 타격하는 순간뿐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야구는 수비팀에서 공격팀에 보복(?)하기가 매우 쉽다. 가장 쉬운 것이 바로 ‘빈볼’이다. 그런데 이런 보복이 상대팀 선수를 향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심판을 향하기도 한다. 투수가 던진 공을 포수가 일부러 잡지 않는 것이 그렇다. 그 경우 심판은 시속 140∼150km의 강속구에 정통으로 얻어맞게 된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공에 맞은 심판은 즉각 병원으로 후송됐고, 대기심이 투입됐다. 골절 없이 가슴 부위의 심한 타박상에 그친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당시 주심으로부터 하소연을 들은 심판위원장은 ‘살인미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과연 이런 행위는 ‘살인미수’가 될까?

●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투수가 공을 던지면 포수는 공을 잡아야 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잡아야 한다. 그것이 포수의 역할이고 의무다. 그런데 일부러 공을 잡지 않는다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범죄가 될까?

형사법적으로도 비슷한 구조를 지닌 범죄가 있다. 바로 부작위범(不作爲犯)이다. 뭔가를 반드시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범죄가 되는 경우다.

부작위범은 2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뭔가를 하지 않은 그 자체가 범죄로 되는 경우다. 교통사고 뺑소니범이 그 예다. 교통사고를 냈다면 피해자를 구호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그 자체로 범죄가 된다. 다른 하나는 뭔가를 하지 않은 것 자체는 범죄가 아닌데, 그것이 작위(作爲·뭔가를 한 것)와 같이 평가돼 범죄가 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수영교사가 가르치는 학생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 학생을 살해하려는 의도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살인죄가 성립한다.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범죄가 되는 것이다.

● 포수가 일부러 포구하지 않으면?

야구도 마찬가지다. 포수가 공을 잡는 척하다 미트를 슬쩍 빼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 처음부터 공을 잡으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공이 오는 방향으로 미트를 전혀 움직이지 않은 경우다. 차이는 앞의 행위에는 뭔가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이고, 뒤의 행위에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말하면 전자는 작위(作爲), 후자는 부작위(不作爲)에 해당한다. 그러나 두 행위는 법적 효과 면에선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위험한 물건인 공에 맞게 해 큰 부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심판위원장의 말처럼 살인미수가 될까? 당시 포수의 의도는 주심에게 폭행이나 조그만 부상을 입게 하려는 정도였을 것이다. 심판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따라서 포수에게는 폭행죄나 상해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야구공은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어 일반 형법이 아닌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로 가중처벌될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은 범죄가 될 수 있고,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꼭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도 범죄가 될 수 있고,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스포츠도, 법률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는 이치는 다 똑같은 것이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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