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사탕 감독’ 꼴찌를 바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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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원 매직’ V리그 인삼공사

서남원 인삼공사 감독(가운데)이 25일 대전 대덕구 팀 체육관 코트에서 네트를 배경으로 선수들과 함께 섰다. 서 감독의 제안으로 이번 시즌 세터에서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한 한수지(왼쪽)는 현재 여자부 블로킹 2위를 달리고 있고 시즌 초부터 출전 기회를 얻은 지민경은 신인왕 ‘영순위’로 꼽힌다.
대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남원 인삼공사 감독(가운데)이 25일 대전 대덕구 팀 체육관 코트에서 네트를 배경으로 선수들과 함께 섰다. 서 감독의 제안으로 이번 시즌 세터에서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한 한수지(왼쪽)는 현재 여자부 블로킹 2위를 달리고 있고 시즌 초부터 출전 기회를 얻은 지민경은 신인왕 ‘영순위’로 꼽힌다. 대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는 프로배구 인삼공사 서남원 감독(50)을 향해 선수들은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감독님, 스마일”이라고 외쳤다. 막내 지민경(19)은 자신과 서른한 살 차이가 나는 서 감독에 대해 “농담을 자주 하는 다정한 감독님”이라고 말했다. 사제 간의 딱딱한 격식은 코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선수들을 바라보는 서 감독의 눈길에서 ‘아버지’를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서 감독은 공격수 최수빈(23) 등과 동갑인 대학생 딸을 뒀다.

○ “고지 탈환보다는 꾸준히 달리는 게 목표”

 25일 대전 대덕구 훈련장에서 만난 서 감독은 최근 배구 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서남원 매직’이란 표현에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서 감독은 “경기를 잘하면 매직이지만 못하면 금세 ‘그럼 그렇지’란 말을 듣기 마련이다. (최근의 상승세는) 모두 선수들 덕분이다. 나는 크게 부각이 안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 감독은 인터뷰 제안을 받을 때마다 “나 말고 선수 인터뷰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겸손의 손사래는 쳤지만 이번 시즌 인삼공사는 여자부 돌풍의 핵으로 주목받고 있고 그 배경엔 서 감독이 있다. 최근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그쳤던 인삼공사는 이번 시즌 서 감독을 선임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전체 6라운드 중 4라운드를 마친 현재 3위 현대건설(34점)과 승점 1점 차로 4위다. 서 감독은 “처음엔 어떻게 하면 꼴찌를 면할까 막막했는데 최근에는 선수들이 이기는 맛을 보더니 마음가짐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애초에 그렸던 그림보다 훨씬 잘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감독은 막연한 목표보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서 감독은 시즌 초부터 현재까지 줄곧 선수들에게 순위 싸움을 강조하기보다는 “한 경기, 한 경기만 보고 가자”고 주문하고 있다. 세터였던 한수지(28)를 센터로 바꿔 중앙공격을 강화하는 등 외국인 선수에게 의존하던 공격 루트도 다양화했다. 이기기 시작하자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따르게 됐다.

 “봄 배구(플레이오프)를 위해 선수들에게 드라이브를 걸 때가 아니냐”는 질문에 서 감독은 “여기서 더 걸 드라이브가 어디 있겠냐”며 웃고는 “이번 시즌 목표는 어디까지나 패배의식을 지우는 것이다. 고지가 보인다고 고지 탈환에 욕심을 내다보면 탈이 날 수 있다. 그보다는 차근차근 마지막까지 꾸준히 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서남원 매직의 비결은 커피타임? 


 평소 배드민턴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서 감독은 최근 선수들과의 ‘커피타임’에 취미를 붙였다. 비슷한 연차 선수들을 불러 모아 훈련장 밖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서 감독은 “배구 이야기는 어떻게든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그냥 여러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눈다. 선수들이 자유계약선수(FA) 계약에 대한 고민을 말할 때는 ‘연봉 많이 주는 쪽을 택해라. 절대 정에 끌려 다니지 마라’란 말도 한다”고 말했다.

 진심이 통해서였을까. 최근에는 선수들이 먼저 커피타임을 요청해 ‘고민상담’을 해오기도 한다. 이달 중순 다녀온 배구단 워크숍 때는 선수들이 먼저 선뜻 1박을 하고 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수지는 “지난 시즌에는 경기장에서 웃는 일이 없었는데 요즘엔 나도 모르게 웃고 있더라”고 했다. 말을 우물가로 끌고 갈 순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법. 감독이 바뀌었다. 선수들이 변했다. 팀도 변했다. ‘서남원 매직’은 진행 중이다.
 
대전=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서남원#인삼공사#솜사탕 감독#한수지#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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