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이호준이 올 시즌을 끝으로 정든 야구장을 떠난다. 24일 경남 창원시 마산구장에서 만난 이호준은 “NC는 나를 멋있게 만든 구단이다. 나는 이곳에서 100% 내가 하고 싶은 야구를 했다”고 말했다.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란 말을 낳게한 그가 선수생활의 마지막에 NC의 창단 첫 우승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창원=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골든글러브를 몇 번씩 받는 선수도 있다지만 늘 남의 이야기였다. 가슴 위 태극마크와도 별다른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23년간 프로 생활을 했다. 그 사이 데뷔 구단(해태)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야구장을 떠난 후배들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연관검색어처럼 ‘인생’이라는 단어가 붙어 다닌다. 트레이드, 부상 등 여러 차례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고도 그때마다 부활해 온 사나이,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란 표현의 주인공 NC 이호준(41) 이야기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를 24일 경남 창원시 마산구장에서 만났다.
○ “2000안타 떠올린 순간 은퇴를 결심”
“뭐든 억지로 하는 건 언젠가 들통이 난다. 내 스타일로 하는 게 편하다. 그래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이호준의 말에서 모든 것을 이룬 ‘베테랑’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는 “옛날부터 직구에 반응이 늦어지면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런데 실제로 그 상태가 될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한다면 성적이 바닥으로 내려간 뒤에 은퇴를 할 것 같았다. 잘할 자신은 있지만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박수 칠 때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300홈런을 치면, 1200타점을 기록하면 은퇴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달려왔는데 어느새 2000안타를 생각하고 있더라. 2000안타를 달성해도 결국 또 다른 구실을 찾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은퇴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안타 119개를 치며 통산 안타 1831개를 기록한 이호준은 프로야구에서 역대 9명만이 보유한 2000안타의 꿈을 그렇게 마음에 묻었다.
○ ‘인생은 이호준처럼’
1994년 해태에서 투수로 데뷔한 이호준은 이듬해 선수 생활을 그만두려 했다. 그는 “그저 내가 세상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매번 패전 처리 투수나 시키니까 야구가 재미없었다. 훈련도 불성실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망나니 같았다. 치열하게 노력하려는 프로 의식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랬던 그에게 1996년 타자로의 전향은 터닝 포인트가 됐다. 광주일고 시절 4번 타자를 도맡았던 그의 타격 재능을 눈여겨본 코칭스태프의 조언에 따른 변신이었다. 새로운 도전은 안일했던 그의 의식을 깨웠다. 야구를 새로 시작한다는 자세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2000년 트레이드로 새 둥지를 튼 SK는 이호준에게 ‘프로정신’을 가르쳐준 곳이다. 이호준은 “김기태 선배(현 KIA 감독)랑 2년 동안 룸메이트를 했는데 매일 선배들이 식사를 마치고 방에 모여서 야구 이야기만 했다. 선배들에게 야구는 삶 그 자체였다. 정말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아이도 생기면서 야구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절실해졌다. 이호준은 SK에서 타점왕(2004년)과 한국시리즈 우승(2007년)의 기쁨을 맛봤다. 첫 자유계약선수(FA) 대박(4년 34억 원)을 터뜨리게 해준 곳도 바로 SK였다.
위기도 있었다. FA 계약 첫해인 2008년 이호준은 무릎 부상으로 8경기 출전에 그쳤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먹튀’ 논란과 함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란 말이 처음 등장했다. 그땐 다소 비꼬는 표현이었다.
이호준에게 2013년 NC와의 FA 계약은 마지막 도전의 무대였다. NC로 오면서 후배들과 함께 열심히 뛰었다. 이호준은 NC에서 4년 내내 20개 이상 홈런을 쳤다. 더그아웃에서도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팬들에게 ‘호부지(이호준+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언젠가부터 야구장을 찾은 꼬마 아이들이 ‘인생은 이호준처럼’을 외치며 응원한다”며 활짝 웃었다.
○ “후배들이 씁쓸하게 야구와 이별하지 않도록”
이호준의 마지막 꿈은 NC의 창단 첫 우승이다.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마운드에서 헹가래 받으며 은퇴하는 것이 꿈이다. 자기 전에 그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고 했다. 이호준은 “개인기록에 집착하진 않지만 그래도 홈런 11개를 더 쳐서 장종훈 선배의 우타자 최다 홈런 기록(340개)은 넘고 싶다. 팀의 중심타자라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욕심이 아니라 목표다”라고 말했다.
이호준은 프로야구선수협회를 통해 선수 은퇴식을 치른다는 계획도 구상 중이다. 현재 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호준은 “솔직히 유명 선수들이 아니면 은퇴식조차 치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선수들이 평생 해 온 야구와 씁쓸하게 이별하지 않도록 앞으로 연말마다 열리는 선수총회에서 은퇴식을 열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NC의 든든한 맏형을 넘어 모든 후배들의 ‘호부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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