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병 아들 위해… 아버지는 휠체어 밀며 뛰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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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주인공 된 2016 백제공주마라톤]
스스로 못 움직이는 아들의 다리 되어 국토종단 성취감 맛본 뒤 마라톤 입문
풀코스 12번 도전… 한번만 빼곤 완주… “아들 소원인 美횡단 꼭 이뤄졌으면”
풀코스 男 김수용-女 오순미 우승

동아일보 2016 백제공주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이 2일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황금빛 들녘을 달리고 있다. 힘차게 달리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의 열기가 가을 들판을 가득 채웠다. 공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동아일보 2016 백제공주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이 2일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황금빛 들녘을 달리고 있다. 힘차게 달리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의 열기가 가을 들판을 가득 채웠다. 공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30km 지점을 지나면서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났다. 그래도 배종훈 씨(50)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완주를 하겠다”는 아들 재국 씨(20·대전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40km 지점부터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숙인 채 간신히 걸음을 떼던 배 씨는 골인 지점인 공주시민운동장이 보이자 다시 힘을 냈다. 웬만한 사람은 혼자서 뛰기도 힘든 마라톤 풀코스를 배 씨는 아들이 탄 휠체어를 밀면서 달렸다.

금강을 따라, 가을을 달렸다 동아일보 2016 백제공주마라톤(공주시 동아일보 스포츠동아 공동주최)에 참가한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이 2일 공주시민운동장을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백제의 문화유산이 가득한 금강을 따라 달리며 달리기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공주=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금강을 따라, 가을을 달렸다 동아일보 2016 백제공주마라톤(공주시 동아일보 스포츠동아 공동주최)에 참가한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이 2일 공주시민운동장을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백제의 문화유산이 가득한 금강을 따라 달리며 달리기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공주=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동아일보 2016 백제공주마라톤(공주시 동아일보 스포츠동아 공동주최)이 2일 백제큰길 일대에서 열렸다. 지난해 공주의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해 ‘공주마라톤’이던 명칭을 ‘백제공주마라톤’으로 바꾼 이번 대회는 참가자 모두가 주인공이었지만 그중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주인공은 4시간47분46초 만에 결승선을 통과한 배 씨 부자였다.

배종훈 씨(뒤)가 2일 열린 동아일보 2016 백제공주마라톤에서 근육병을 앓고 있는 아들 재국 씨의 휠체어를 밀며 역주하고 있다. 4시간47분46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배 씨 부자는 이날로 11번째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공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배종훈 씨(뒤)가 2일 열린 동아일보 2016 백제공주마라톤에서 근육병을 앓고 있는 아들 재국 씨의 휠체어를 밀며 역주하고 있다. 4시간47분46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배 씨 부자는 이날로 11번째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공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재국 씨는 여섯 살 때 ‘근육병’(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았다. 근육이 점점 굳어 끝내 사망에 이르는 난치병이다. 아버지는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된 아들의 두 다리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은 다 해주겠다고 맹세했다. 아들은 넓은 세상을 마음껏 달리고 싶어 했다. 2007년 국토 종단에 성공하며 성취감을 맛본 부자는 2012년 하프코스를 시작으로 마라톤에 입문했다. 배 씨는 이전까지 마라톤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지만 아들의 응원 속에 레이스를 끝까지 마치며 자신감을 얻었다. 2013년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했고 이날까지 11차례나 풀코스를 완주했다. 참가한 대회 중 끝까지 레이스를 마치지 못한 것은 2014년 경주벚꽃마라톤 한 번뿐이다. 배 씨는 “당시 27km 지점에서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쓰러졌다. 중도 포기한 참가자들을 싣는 버스를 타자 재국이가 너무 서럽게 울더라.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달려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지난해 주위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함께 뉴욕 마라톤에도 참가했던 재국 씨는 “아버지 파이팅”이라며 활짝 웃으면서 “같은 자세로 한 시간만 있어도 근육이 뭉쳐 힘들지만 마라톤이 너무 즐겁다. 역사와 컴퓨터 과목을 좋아하는데 나중에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41km 지점에서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다 함께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온 박승미 씨(48)는 “재국이의 소원이 미국 횡단이다. 언젠가 그 소원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부자는 ‘근육병이 완치되는 그날까지’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뛰었다.

 풀코스 남자부 우승은 2시간50분59초를 기록한 김수용 씨(41)가 차지했다. 2시간29분27초가 최고기록인 김 씨는 풀코스를 50번 이상 완주했다. 2003년 마라톤을 시작한 김 씨는 “금강을 따라 달리는 백제공주마라톤 코스는 일품이다. 2011년 이 대회에서 2위를 했는데 오늘 드디어 우승을 해 기분이 좋다. 내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며 1위를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3시간17분0초의 기록으로 풀코스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오순미 씨(44)는 “장염 증세 때문에 배가 아파 몇 번이나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즐기자는 생각으로 완주했다. 마라톤은 늘 힘들지만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회 현장에는 오시덕 충남 공주시장, 이창규 충남도 문화체육관광국장, 윤석우 충남도의회 의장, 윤홍중 공주시의회 의장, 조길행 충남도의회 의원, 강복순 공주경찰서장, 오영환 공주소방서장, 이연주 공주교육지원청 교육장,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 등이 내빈으로 참석해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공주=이승건 why@donga.com / 임보미 기자
#백제공주마라톤#근육병#휠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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