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배드민턴이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한 데는 10년 넘게 일본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박주봉 감독이 그 중심에 있다. 요넥스 코리아 제공
박주봉 감독(52)이 이끄는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은 14일 끝난 전영오픈에서 1978년 이후 38년 만에 우승자를 배출했다. 여자 단식에서 세계 랭킹 8위 오쿠하라 노조미(21)는 1977년 이후 39년 만에 이 종목 정상에 선 일본 선수가 됐다. 이에 앞서 여자 복식에서는 다카하시 아야카-마쓰토모 미사키 조가 우승했다.
1899년 시작된 전영오픈은 최고 권위의 배드민턴 대회다. 올해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했다.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무대에서 일본은 5개 종목에서 금메달 2개와 남자 복식 은메달 등 화려한 성적을 거뒀다. 한국은 동메달 1개를 땄다. 일본 선수단이 귀국한 15일 도쿄 하네다 공항에는 80명 가까운 취재진이 몰렸다. 선수 시절 전영오픈에서 9회 우승했던 박주봉 감독은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큰 대회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충분히 끌어올리게 됐다. 자만할 때는 아니다. 다시 합숙 훈련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오랜 침체를 겪던 일본 배드민턴이 세계 최강으로 발돋움한 중심에는 ‘셔틀콕 황제’로 이름을 날린 박 감독이 있다. 2004년 일본 대표팀을 맡은 박 감독은 풍부한 경험과 남다른 리더십으로 10년 넘게 장수하고 있다. 그는 소속 팀의 입김에 따라 흔들리던 대표팀 훈련 방식을 뜯어고친 뒤 한국식의 팀워크, 체력을 강조했다.
감독과 선수의 벽을 허물기 위해 통역을 쓰는 대신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혔다. 박 감독의 계약 기간은 내년 3월까지인데 벌써부터 2020년 도쿄 올림픽 때까지 연장하자는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회 챔피언 오쿠하라는 박 감독이 주니어 시절부터 공을 들였다. 박 감독은 유망주 발굴을 위해 중고교 대회를 자주 관전하며 발품을 팔았다. 일본 대표팀은 올해 초 오키나와에서 박 감독의 주도로 하루 4시간 30분에 걸친 강도 높은 체력 강화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오쿠하라는 “모래밭을 뛰어본 건 처음이다. 뛰다가 쓰러진 적도 있었지만 어떤 위기에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길렀다”고 말했다. 오쿠하라는 대회 4강에서 세계 1위 카롤리나 마린(스페인)을 누른 뒤 결승에서는 역대 여자 단식 최장인 1시간 39분의 접전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박 감독의 지도력을 앞세운 일본 배드민턴의 가파른 성장세는 올림픽에서 전통적인 강세 종목으로 분류되는 한국 배드민턴에는 위협적인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리우 올림픽에서 남자 복식과 여자 단식, 여자 복식 등에서 메달을 노리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일본과의 대결이 불가피하게 됐다.
전영오픈 시상식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한 박주봉 일본대표팀 감독(오른쪽)과 여자단식 우승자 오쿠하라 노조미(가운데). 박주봉 감독 제공일본 배드민턴의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은 역시 박 감독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2012년 런던 대회 때의 은메달이다. 일본은 리우에서 사상 첫 배드민턴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박 감독은 “내가 태극마크를 달았던 1980년에는 일본이 워낙 강해 한국과는 훈련도 같이 안 하려 했다. 그때 일본 교재와 일본인 코치를 통해 운동하던 기억도 난다”고 회고했다. 그랬던 박 감독이 요즘 일본에서 ‘가미사마(神樣·신의 높임말)’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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