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와 최용수의 ‘의리 축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9일 15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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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기자.
이종석 기자.
꼭 1년 전 오늘. 브라질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했던 홍명보 감독(46)이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대표팀은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무 2패로 탈락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16년 만의 무승(無勝) 월드컵. 비난이 빗발쳤다. 대표팀이 조별리그 탈락 후 브라질 현지에서 술자리를 가진 사실까지 드러나자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선수로 4번(1990~2002년), 코치로 한 번(2006년)을 포함해 6번이나 월드컵 무대를 밟은 홍 감독. 한국 선수 A매치 최다 출전(136경기) 기록까지 갖고 있는 ‘천하의 홍명보’도 “의리 축구 고집하더니 꼴좋다”는 투의 십자포화 비난을 견뎌내지 못했다.

뜬금없이 웬 철 지난 홍명보의 의리 축구? FC 서울 최용수 감독(42)의 최근 행보를 보며 의리 축구가 떠올랐다. 최 감독은 최근 중국 프로축구 장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계약기간 2년 6개월에 연봉 20억 원. 총액 50억 원짜리 제안이었다. 최 감독은 거절했다. 그러자 돈 대신 소속 팀과의 의리를 택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최 감독은 장쑤 구단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지 않았다. 서울 구단도 “최 감독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래서 (최 감독이) 고민에 빠졌었다”고 밝혔다. K리그 클래식의 한 감독은 “최 감독이 덥석 물기 쉽지 않은 옵션 조항이 있었다는 걸로 안다”고 했다. 장쑤는 1부 리그 16개 팀 중 6위다. 중상위권인 팀이 시즌 도중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을 경질했다. 그리고 후임자를 찾는 상황. 후임 감독에게 바라는 성적이 어느 수준일지 대략 답이 나온다. 장쑤 지휘봉을 새로 잡는 사령탑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최 감독은 이것저것 따져보고 궁리한 끝에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소속 구단과의 의리가 아닌 자신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물론 그 결정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다시 홍명보의 의리 축구로 돌아가 보면. 홍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박주영(30·서울)을 포함시키자 팬들은 의리 축구라고 비아냥댔다. 당시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소속이었던 왓퍼드에서도 출전 기회를 못 잡던 박주영을 의리 하나로 뽑았다는 것이었다. 박주영이 홍 감독의 고려대 후배여서 뽑았다는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감독은 없다. 동네 대회도 아니고 월드컵을 준비하는 감독이 실력 없는 선수를 의리 때문에 뽑는다? 감독의 축구 인생이 곤두박질 칠 수도 있는데 그럴 수는 없다.

박주영은 홍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한국이 노메달의 위기에 몰렸을 때 홍 감독을 구했다. 당시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박주영은 이란과의 동메달 결정전 후반에 2-3으로 따라붙는 추격 골을 넣었고, 한국은 4-3으로 역전승했다. 홍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던 2012년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3·4위 결정전에서도 박주영은 선제 결승골로 2-0 승리를 이끌며 한국 축구에 올림픽 첫 메달을 안겼다.

홍 감독에게 박주영은 뽑아 주면 반드시 뭔가를 보여주는 선수였다. 그래서 홍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때도 욕먹어가면서 박주영을 뽑았던 것이다. ‘나를 위해, 팀을 위해 이번에도 뭔가를 보여 달라’는 심정으로…. 국가대표팀까지 갈 것도 없다. 일반 회사의 팀장이라도 팀원 구성에 관한 전권을 가졌다면 그동안 같이 일할 때 성과를 냈던 부하부터 뽑는 게 정상이다.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박주영이 브라질에서는 별로 보여준 게 없었다는 것. 홍 감독도, 최 감독도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을 뿐, ‘의리’를 갖다 붙여 포장할 일은 아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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