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영 “태릉선수촌서 만난 부모님…태극마크 꿈 이뤄드릴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일 15시 23분


코멘트
“사진 좀 찍으시자”고 했더니 손사래부터 쳤다. “우린 뭐 한 일 없다. 다 희영이가 잘 한 거다.” 1일 태국 촌부리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에서 양희영(26)이 우승한 직후 만난 그의 아버지 양준모 씨(51)와 어머니 장선희 씨(51)였다.

양희영에게는 국가대표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게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아버지는 카누를 했고, 창던지기 대표였던 어머니는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에서 동메달을 땄다. “부모님에게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하자 장 씨는 오히려 “운동 한 부모 욕심에 딸을 너무 밀어 붙여 힘들 게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이 지난해 시즌 막판 3개 대회를 연속 불참하며 방황했던 얘기를 꺼냈다. 장 씨는 “희영이가 골프를 하면서 늘 앞만 보고 달려왔다. 대학도 포기하고 운동에만 매달렸는데 부질없다고 여기더라. 밤 12시까지 펑펑 울기도 했다. 그래서 원 없이 쉬면서 하고 싶은 거 해보라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양희영은 “채를 놓아보니 골프에 대한 절실함이 더 커지더라.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즐겨보라는 엄마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뛰고 싶어도 못 뛰게 될 때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했다. 지난 연말 23위였던 그의 세계 랭킹은 2일 발표에서 10위로 13계단 뛰어올랐다.

아버지 양 씨는 체육교사로 서산 서령고 카누부를 전국 최강으로 이끌다 딸의 호주 유학을 위해 퇴직한 뒤 뒷바라지를 해왔다. 장 씨도 체육교사로 18년을 근무했다. 양 씨는 “희영이가 어려서부터 잘한 건 노력과 승부근성을 강조한 부모의 영향이 물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계를 느꼈다. 스스로 운동을 즐기게 하는 게 더 중요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장 씨는 “요즘 희영이가 대회 때 친한 친구도 부르고 하면서 골프에 더 몰입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양희영은 “아버지 퇴직금을 갖고 골프 유학을 시작했다. 고생하며 키워주신 부모님 실망시켜 드려선 안 된다. 메인 스폰서가 없어도 대회에 많이 나가 상금 많이 벌면 되지 않냐”며 웃었다. 1985년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양희영의 부모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 양희영은 “부모님이 못 이룬 올림픽 출전의 꿈을 내가 대신 이뤄드리고 싶다. 내년 리우 올림픽 때 태극마크를 달겠다”고 다짐했다.

촌부리=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