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리틀야구’ 작은 영웅들, 미안하고 고맙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8월 26일 06시 40분


■ 불모지의 한국 리틀야구, 종주국 미국 꺾고 29년 만에 기적같은 월드시리즈 우승

프로야구 인기뒤에 가려 퇴색…전용구장도 7개뿐
인프라 약해 유니폼에도 ‘KOREA’ 달지 못했지만
즐기는 야구로 세계강호 모두 꺾고 감동적인 우승

“얘들아, 장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한국야구 꿈나무들이 세계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한국리틀야구대표팀(12세 이하)은 25일(한국시간) ‘2014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결승전에서 미국 시카고 대표를 8-4로 누르고 29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우승한 후 우리 아이들이 마운드에 꽂은 조그만 태극기는 2006년 미국에서 벌어졌던 제1회 WBC대회에서 일본을 누르고 4강행을 확정지은 뒤 서재응이 마운드에 꽂았던 큰 태극기와 오버랩 됐다. 당시 서재응의 하늘색 점퍼에는 태극기가 선명했지만 이번 한국대표팀의 푸른색 유니폼에는 태극기뿐만 아니라 ‘KOREA’라는 국가명도 없었다. 아시아퍼시픽(ASIA-PACIFIC)이라는 글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글자를 보면서 더 미안했고 고마웠다.

● “KOREA라는 국가명을 못 쓴 건 다 우리 탓이다!”

1980년대 프로야구가 붐을 타면서 리틀야구는 되레 뒷걸음질 쳤다. 학교중심의 야구, 입시위주의 엘리트 스포츠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1985년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2연속 우승 이후 한국 리틀야구는 유성처럼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전용 야구장이 단 7개 밖에 없다. 그동안 많은 어른들이 야구 인프라 확충을 노래하며 전국에 야구장을 건설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시설은 아니었다. 프로야구를 중심으로 한 야구산업은 발전했지만 어린 선수들은 깊은 그늘 속에서 차츰 설 자리를 잃었다. 리틀야구팀이 급격하게 준 건 예견된 일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KOREA’라고 새겨진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우승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부족한 인프라 때문이었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자동출전권을 따기 위해서는 한 나라에 700개 이상의 팀이 있어야 했다. 한국은 그 조건을 만족할 수 없었다.

아시아권에서 이 조건을 충족한 팀은 일본과 호주 두 나라 뿐이었다. 자동 출전권이 없는 우리 선수들은 아시아태평양 예선을 거쳤다. 항상 그랬듯 높은 벽은 대만이었지만 6연승을 거두며 리틀야구의 성지로 불리는 미국 윌리엄스포트행 티켓을 따냈다.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가게 만든 건 어른들의 무관심 탓이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다.

● 당당하게 경기하고 야구를 즐길 줄 아는 아이들

2014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본선에 진출한 우리 선수들은 경기를 즐길 줄 알았다. 15일 첫 경기의 부담감으로 유럽-아프리카 대표 체코에게 끌려 다녔다. 3-3인 3회 1사 1·2루에서 박지호의 기습번트가 아웃판정을 받았으나 비디오판독을 통해 파울로 바뀐 이후 3점 홈런을 때려내며 한국은 승기를 잡았다. 이후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푸에르토리코에 8-5 승리를 거두며 우리 꿈나무들은 미국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두 차례의 한일전에서 보여준 담력과 압도적인 기술은 100개 남짓한 리틀야구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줬다.

미국 언론들은 “한국의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야구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치열한 경기가 끝나면 천진난만한 아이들로 돌아가 상대와 친구가 되는 우리 선수들은 중요한 고비에서 부담을 이기고 즐기는 방법을 알았다. 많은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강력한 상대에 대한 위축, 그리고 ‘∼이니까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야구를 즐겼다. 야구를 즐길 줄 아는 우리 아이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당당하게 세계 최고봉에 우뚝 선 우리 아이들. 그래서 더 대견하고 고맙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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