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3년 뒤 올림픽이 있잖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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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20 월드컵 승부차기서 4강 좌절
이라크에 한골 먹으면 바로 따라붙어… 연장 종료 15초전 극적 동점골 3-3
FIFA “가장 놀라운 클라이맥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8일 터키 카이세리의 카디르 하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4-5로 패한 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 승부차기 6번째 키커로 나서 실축한 이광훈(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우주성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8일 터키 카이세리의 카디르 하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4-5로 패한 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 승부차기 6번째 키커로 나서 실축한 이광훈(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우주성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우리의 목표는 4강이다. 이라크를 꺾고 새 역사를 써야만 한다.”(7월 7일 카이세리)

한국 청소년 축구대표팀의 수비수 송주훈(건국대)은 8일 터키 카이세리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이라크와의 8강전을 앞두고 자신의 일기장에 각오를 적었다. 16세 때부터 일기를 써 온 송주훈은 이번 대회에도 일기장을 가져갔다. 지난달 22일 쿠바와의 첫 경기(2-1·승)를 앞두고 쓴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모든 준비를 끝냈다. 월드컵이 끝났을 때 나는 더이상 국가대표가 아니다. 잘하기보다 최선을 다하자.”(6월 21일 카이세리)

예선에서 1승 1무 1패를 거둔 한국은 조 3위로 16강에 진출했다. 4일 콜롬비아와의 16강전(8-7·승부차기 승)을 앞두고 호텔을 나서기 전 송주훈은 다시 일기장을 펼쳤다. “곧 경기장으로 간다. 경기를 이기고 방에 와 일기장을 펼치고 싶다. 한 줌의 후회도 남기지 말고 죽기 살기로 뛰자.”(7월 4일 트라브존)

한국은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5로 져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결과보다 과정이 빛난 경기였다. FIFA는 “20세 이하 월드컵 역사상 가장 놀라운 클라이맥스로 끝났다”며 이 경기를 극찬했다.

한국은 전반 21분 알리 파에즈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4분 뒤 오른쪽 터치라인에서 심상민(중앙대)이 골문 앞까지 길게 던진 공을 권창훈(수원)이 헤딩으로 방향을 바꿔 동점골을 터뜨렸다. 한국은 전반 42분 추가골을 허용했지만 전반 막판 교체 투입된 이광훈(포항)이 후반 5분 헤딩으로 다시 골망을 흔들며 경기의 균형을 맞췄다.

전후반을 2-2로 마친 뒤 연장전에 나선 한국은 연장 후반 13분 실점하며 패색이 짙었지만 연장 종료 직전 투입된 정현철(동국대)이 경기 종료 15초 전 극적인 중거리 슛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20분간 혈투를 벌이며 끈질긴 추격전을 계속한 한국의 모습은 투혼 그 자체였다. 고비마다 절묘한 선수 교체를 한 이광종 감독의 용병술도 빛났다. 이번 대표팀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으로 2009년 이후 4년 만에 이 대회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30년 만의 4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축구의 앞날에 기대를 걸게 했다.

경기 뒤 송주훈은 터키에서의 마지막이 될 일기를 적었다. “정말 아쉽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 4강 역사를 다시 쓰지는 못했지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한 경기이기에 위안이 된다. 3년 동안 고생하고 추억도 많이 쌓았는데 이제 이런 친구들과 함께 훈련을 하지 못한다니 아쉽다. 그렇지만 3년 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우리 모두 훌륭한 선수가 돼 다시 만나기로 하자. 얘들아 고맙다.”(7월 8일 카이세리)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제민 - 광훈 잘했어, 고개 들어” ▼
승부차기 실축, 수많은 변수 중 하나… 한 대회 2번 이상 성공한 팀 드물어

    

승부차기 4-4 상황에서 이라크의 6번째 키커 파르한 샤코르가 골을 넣고 환호하는 사이 한국의 두 선수는 고개를 그라운드에 묻고 한동안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두 번째 키커로 나서 볼을 하늘로 날려 보낸 연제민(수원)과 6번째 키커로 슛이 골키퍼에게 막힌 이광훈(포항). 패배의 순간은 너무 허망했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팬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글까지 남겼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이에 대해 “절대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승부차기 실축은 120분간 경기에 더해 나올 수 있는 수많은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전후반, 연장 전후반에 골을 더 넣었다면 승부차기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확연하게 드러난 현상이라고 실축한 선수를 비난해선 절대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도 “한국 선수들 정말 잘했다. 한 대회에서 두 번 이상 승부차기에서 성공하는 팀은 드물다”고 말했다.

승부차기는 ‘공포의 게임’이다. 권총 탄창에 탄알을 하나만 넣고 돌린 뒤 돌아가며 머리에 쏘는 ‘러시안룰렛’으로 불린다. 러시안룰렛처럼 실력보다는 운에 좌우되며 항상 희생양이 나오게 돼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브라질과의 결승 승부차기에서 이탈리아의 영웅 로베르토 바조가 실축하는 등 슈퍼스타들도 숱하게 고개를 숙였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이런 측면을 인식하고 승부차기는 승부를 가리는 것으로만 인정하고 공식 기록엔 무승부로 기록하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U-20 월드컵#승부차기#권창훈#이광훈#정현철#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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