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유 받은 ‘닥동 축구’… 여유 잃은 ‘브라질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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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최종예선 레바논전… 최강희號 졸전끝에 무승부

《 ‘닥공(닥치고 공격)’이 아니라 ‘닥동(닥치고 동국)’. 5일 새벽 한국 축구대표팀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A조 레바논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1-1로 비기자 일부 축구팬은 이 같은 표현으로 비난했다. 최강희 대표팀 감독은 프로축구 전북 현대 감독 시절 파워 넘치는 공격으로 ‘닥공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는 아시아 축구연맹(AFC)에 ‘셧업 어택(Shut up, Attack)’으로 소개됐고 아시아 축구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다. 팬들은 이 사실에 빗대어 최 감독을 “이동국밖에 모른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

이날 경기에서 한국의 원 톱 스트라이커로 나선 이동국은 여러 차례 결정적 찬스를 놓쳤다. 팬들의 비난은 이동국과 그를 기용한 최 감독에게 집중됐다. 팬들에게 두 사람은 뗄 수 없는 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그만큼 최 감독은 이동국을 중용해 왔다. 이동국의 대표팀 승선 논란이 벌어질 때 최 감독은 “이동국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정면 돌파했다. 전북 소속이던 이동국은 2011년 중동 팀으로부터 40억 원 이상의 이적료와 거액의 연봉을 제안받았으나 최 감독과의 의리 때문에 가지 않았다. “빌딩 한 채 값을 날렸다”고 했던 그는 아내에게 “그 돈은 내 돈이 아닌가 보다”라며 위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의리와 보은의 개념을 뛰어넘는 끈끈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북이 닥공 신드롬을 일으킬 당시의 이동국과 대표팀에서의 이동국은 다르다. 이동국이 변했다기보다는 환경이 다른 것이다. 이동국의 장점은 묵직한 파워로 몸싸움에서 지지 않고 공격 포지션을 확보하는 것이다. 슈팅도 매섭다. 그러나 다소 느리다. 전북에는 에닝요 등 측면 공격수들이 뒤를 받치며 이동국과 상호 보완하고 있다. 대표팀에는 이처럼 이동국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동료가 없다. 최 감독은 이동국을 원 톱으로 놓고 이청용 이근호 등에게 측면과 뒤를 맡겼으나 효과적이지 못했다. 최 감독의 실험은 이동국 원 톱에 다양한 측면 공격수들을 동원해 보는 것이었으나 최적 조합을 찾지 못했다. 최 감독의 답답함 속에 에닝요의 귀화가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팬들은 최 감독이 지나치게 이동국 중심으로 팀을 운영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최 감독으로서는 오랫동안 가장 확실하게 믿어 왔던 카드를 버리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최 감독은 11일 우즈베키스탄전, 18일 이란전 등 예선 두 경기를 안방 경기로 남겨 놓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과 승점 11로 같지만 골득실에서 뒤져 2위를 달리고 있다. 승점 10으로 3위인 이란은 전통적으로 한국을 괴롭혀 온 강팀이다. 최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을 “사실상의 결승전”이라고 표현했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과 카타르, 이란은 한국과 레바논전을 남겨 놓았다. 카타르와 레바논이 상대적 약체여서 한국보다는 우즈베키스탄과 이란이 유리하다. 한국이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이기면 조 1위가 된다. 한국이 남은 경기에서 1승 1패를 거둘 경우 우즈베키스탄과 이란 중 2연승하는 팀이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은 골 득실까지 따져 조 2위를 노릴 수 있다. 조 1, 2위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고 3위는 B조 3위와의 대결 및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이겨야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마지막 월드컵 무대를 꿈꾸는 이동국과 고사 끝에 대표팀 감독을 수락했던 최 감독. 팬들의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서로를 지나치게 믿은 것이 죄라면 죄인 두 사람 앞에 험난한 파도가 일고 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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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레바논전#최강희#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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