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 사커에세이] 더 넓은 세상 경험하게 해 준 ‘에이전트의 삶’

  • 스포츠동아
  • 입력 2012년 10월 16일 07시 00분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출근길 차창 밖으로 넘실대는 코스모스의 분홍빛 향연을 바라보다 보면 가을이 어느새 한가운데에 와있음을 실감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 가져볼 만한 때이다.

따지고 보면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처럼 여행하기 좋은 조건도 없다. 특히 평소 여행을 좋아하고 틈이 날 때마다 자연과 문명과 사람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필자 역시 늘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지만 지나고 보면 그 좋은 출장 기회들을 대부분 그냥 날려 보낸 것 같아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선수 이적 협상, 경기관전, 선수관리에 신경을 쓰다보면 불과 몇 십 분이면 닿을 수 있는 명소들을 그냥 놓치고 오기 십상이다.

기자로서도 스포츠 현장을 찾아 적잖은 나라를 다녔지만 에이전트를 하면서부터는 더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프랑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은 최소 분기에 한번, 중동 및 가까운 중국 일본 출장까지 합치면 많을 경우 1년에 십여 차례씩 국제선 비행기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해외체류기간만 연평균 3∼4개월, 어떤 해는 6개월 가까이 외국에서 머무른 적도 있다. 그런데 “어딜 가서 뭘 보고 왔느냐”고 물으면 선뜻 떠오르는 게 없다. 출장목적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주변을 돌아본 기억도 별로 없고, 가더라도 사진이나 메모를 남긴 것도 거의 없어 자꾸 꺼져가는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무에만 신경을 썼다는 것은 사실 핑계일 것이다. 부지런하지 못한 성격 탓에 그 좋은 기회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10여년의 아까운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고 나니 이제부터라도 출장기회를 소중하게 활용하고픈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선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출장 일정 중에서 ‘나’를 위해 투자할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그 시간으로 어디를 둘러볼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게 첫 번째, 그 다음은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챙기는 일이다.

그나마 소득이라면 수십여 나라를 스치듯 지나가면서도 호기심은 잔뜩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를 가보고 ‘로마인 이야기’를 읽게 되고,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을 수차례 둘러보며 학창시절 골칫거리였던 세계사를 이젠 본격 연구하고픈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중동을 왕래하면서부턴 이슬람 연구서를 들여다보기도 했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사인 ‘십자군 이야기’ 전 3권을 독파하게된 것도 늦게 배운 호기심이 준 수확이다.

스포츠 에이전트는 누구보다 세상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이다. 꼭 해외가 아니라도 잦은 출장기회를 잘 활용하면 역사, 종교, 문화인류, 언어, 민속, 심지어 탐사에 이르기까지 전문가적인 식견을 갖출 수 있다. 굳이 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주)지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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