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결정전을 하는 동안 진욱이 형, 오현이 형과 많은 얘기를 했다. 우승하지 못하면 고참들은 필요 없는 존재이니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된다는 말을 했다. 챔피언이 됐으니 일단 남을 수 있게 됐다(웃음). 실업에서 8번 우승했으니 프로에서도 8번 우승할 때까지 뛰고 싶다.”(삼성화재 주장 고희진)
삼성화재가 5시즌 연속이자 통산 6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화재는 12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 4차전에서 반전을 노리던 대한항공을 3-0(25-22, 25-21, 25-17)으로 완파하고 3승 1패로 시리즈를 마쳤다. 정규시즌에서 우승한 삼성화재는 통산 3번째 통합우승이라는 기록도 보탰다. 4대 프로 종목에서 한 팀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은 여자농구 신한은행이 이어가고 있는 6연패다. 야구에서는 해태가 4연패(1986∼1989년)의 기록을 갖고 있다.
전날 1세트에서 6차례나 상대 블로킹에 막히며 4득점에 그쳤던 가빈(26)은 이날 시작부터 타점 높은 공격으로 점수를 쌓아 올렸다. 1, 2세트에서 각각 12점을 쏟아 부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최종 공격 성공률은 63.6%에 달했다. 대한항공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포 마틴이 2세트 후반 가빈의 스파이크를 막으려다 손가락을 다쳐 벤치로 물러나는 바람에 추격할 동력을 잃고 주저앉았다. 1차전 48점, 2차전 38점, 3차전 28점, 4차전 37점을 올린 가빈은 기자단 투표 총 22표 가운데 16표를 얻어 3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리베로 여오현(34)이 3표, 세터 유광우가 2표를 얻었고, 기권은 1표였다. 가빈은 “어제처럼 최악의 경기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동료들의 땀이 담긴 트로피를 안게 돼 기분이 너무 좋다. 재계약 여부는 캐나다에 돌아가서 차분히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가빈이라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도 있지만 삼성화재의 독주 비결은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팀워크다. 이는 석진욱(36), 여오현, 고희진(32) 등 ‘고참 3총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 감독이 지난달 정규시즌 우승의 원동력으로 “경험 많은 선수 3명이 팀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모두 삼성화재가 무패 행진을 달리던 실업 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어 온 사이다. 당시 삼성화재는 77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달성했다. ▼ “삼성화재 역사는 신치용의 감독인생” ▼
17년째 사령탑 지킨 ‘불사조’
“경기를 앞두고 미팅을 하면서 헌신과 팀워크에 대해 선수들에게 얘기했다. 오늘은 이기겠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쳤다. 모든 선수가 다 잘했고, 고참들이 특히 고맙다.”
삼성화재의 역사는 곧 인간 신치용(57)의 감독 인생이다.
실업 한국전력(현 KEPCO)에서 1983년부터 12년 동안 코치로 일하던 신 감독은 1995년 11월 삼성화재의 초대 사령탑이 됐다. 그해 선수 부족으로 대회에 나가지 못했던 삼성화재는 이듬해 처음 출전한 겨울리그에서 정상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우승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세월이 흘러 선수는 모두 바뀌었지만 신 감독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다.
신 감독이 창단 때부터 일관되게 강조해온 것은 기본이다. 배구 기술은 나중 문제고 성실함, 예의 등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 덕분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삼성화재 배구단의 문화를 만들었다.
흔히 감독을 ‘파리 목숨’이라고 한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게 감독 자리다. 그런 면에서 신 감독은 실업 시절이 포함되긴 했지만 한팀에서 17년 동안 사령탑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불사조’다. 한팀에 가장 오랫동안 재직하는 감독이 되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신 감독은 “감독으로 계속 남는 건 내 선택 사항이 아니다. 구단에서 신뢰해 줄 때까지다. 창단 감독으로 20년을 채울 수 있는 영광을 가진다면 더없이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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