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은퇴 송종국 본지 단독인터뷰] 송종국 “축구 대신 가족…떠나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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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7일 06시 00분


송종국. 동아일보DB
송종국. 동아일보DB
“지난달 어머니 떠나보낸후 고민끝에 결정
아내는 말렸지만 아이들은 너무 좋아해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 만들고 싶어
EPL진출 1호 될뻔했는데 그게 아쉬워요”


26일 서울 강남에서 스포츠동아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송종국(33)은 담담해 보였다.

송종국은 2002한일월드컵에서 부동의 오른쪽 풀백으로 4강 신화를 이끈 주인공. 이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진출해 설기현(인천)에 이어 한국선수로는 두 번째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를 밟았다. 2005년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에 복귀해 2008년 주장으로 우승을 이끌었다. 영광만 있었던 건 아니다. 네덜란드 진출 직후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한 뒤 후유증으로 내내 고생했다. 지금도 그의 왼쪽 발목은 쭉 펴지지 않는다.

송종국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중국 톈진 테다와 계약을 해지했다. 올해 몇몇 K리그 팀이 관심을 보였지만 송종국은 “지금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시기라 생각했다”며 은퇴를 택했다. 또 한명의 한일월드컵 스타가 현역 유니폼을 벗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은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한참 생각 후) 올 초부터 계속 고민했다. 2월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의욕이 꺾인 것도 사실이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몇몇 원하는 국내 팀도 있었지만 이제 새롭게 시작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의 존재가 남달랐던 것 같다.

“누님과 형님이 계시고 막내다. 누님과 형님께 죄송하지만 막내가 운동한다고 하니 어머님이 유독 많은 사랑을 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넘어지면 어지간한 부상이 아니면 바로 바로 일어났다. 내가 쓰러지면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티를 안 내고 일어나는 게 익숙해졌다.”

-가족들의 반응은.

“주변 지인들에게 은퇴 이야기를 거의 안했다. 아내도 얼마 전에 알았다. 아내가 더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오히려 반대했다. 6살 딸(지아)과 5살 아들(지욱)은 아빠가 축구하러 안 간다고 하니 너무 좋아한다.(웃음)”

-은퇴 후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유소년 축구 쪽에 몸담고 싶다. 축구하고 싶은 아이들을 관리하고 재능 있는 선수들은 엘리트로 육성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용인시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적극 도와주고 계신다. 내가 발굴한 아이들이 좋은 선수로 크면 정말 보람을 느낄 것 같다.”

-축구인생 최고의 해는.

“2002년이다. 많은 분들이 아직까지 기억해 주시지 않나.”

-특히 조별리그 3차전에서 포르투갈 피구를 꽁꽁 묶었던 게 인상적이었다.

“피구의 개인기가 워낙 좋았다. 그런데 나도 그 때는 무서운 게 없었다. 피구가 몇 번 드리블 했는데 나에게 막혔다. 표정을 보니 굉장히 열 받았더라. 그 다음부터 피구가 마인드컨트롤 못하고 계속 제치려고만 하다가 뺏기고…. 피구가 반대쪽으로 이동했는데 이번에는 (이)영표 형 한테 다 막히고.(웃음)”

-축구선수로서 못 다 이룬 꿈이 있다면.

“영국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서지 못한 것이다. 2002월드컵 직후에 토트넘을 비롯한 몇몇 영국 팀의 오퍼가 있었다. 이적료나 임대, 완전이적 등 계약조건 때문에 늦어져서 안 됐고 페예노르트로 방향을 틀었다. 그 때 성사됐으면 (박)지성이 전에 영국진출 1호 선수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하.”

-먼저 은퇴한 안정환, 이을용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존경하는 형들이다. 중국에 있을 때도 (안)정환이 형과 마지막 대결을 했다. (안정환은 다롄, 송종국은 톈진 소속) 개인적으로 영광이었다. 형들을 비롯한 2002세대들이 한국축구를 변화시켰다는 자부심이 있다. 지금 후배들도 한국축구의 위상 높인 2002세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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