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룡 “호랑이? 가족들 앞에선 한없이 순한 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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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9일 07시 00분


“365일 걸려왔던 아빠 전화…통화는 언제나 3초”

“이것이 호랑이 가족”. 김응룡 전 삼성라이온즈 사장이 처음으로 가족의 모습을 스포츠동아에 공개했다. 왼쪽부터 장녀 김혜성, 부인 최은원 여사, 외손주 박선호, 김응룡 전 사장, 차녀 김인성. 용인|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이것이 호랑이 가족”. 김응룡 전 삼성라이온즈 사장이 처음으로 가족의 모습을 스포츠동아에 공개했다. 왼쪽부터 장녀 김혜성, 부인 최은원 여사, 외손주 박선호, 김응룡 전 사장, 차녀 김인성. 용인|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한국야구 전설 & 화가·음악가 딸
우리 가족, 이렇게 살고 있답니다

‘한국 야구의 전설’, ‘한국시리즈 12회 우승(감독으로 10회, 사장으로 2회)의 대승부사’, ‘그라운드의 호랑이’ 김응룡(72) 전 삼성라이온즈 사장과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은 내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처음에는 김 전 사장의 두 딸이 취재의 대상이었다. 화가인 첫째 딸 김혜성(39) 씨와 음악가인 둘째 딸 김인성(37) 씨가 합동으로 개인전 겸 독주회를 개최한다고 해서 성사된 취재였다. 그런데 이 아이템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데스크회의에서 “이왕이면 김응룡 전 사장과 가족을 함께 다루어보자”고 결정이 난 것이다.

평소 사생활 드러내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던 그였기에 기자의 마음고생이 없지 않았다. 특히 가족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막상 연락을 하자 김 전 사장은 흔쾌히 취재에 응하겠다고 했다.

잠시 후 큰딸 김혜성 씨가 인터뷰 장소를 문자 메시지로 보내왔다. 김 전 사장의 자택주소였다. 김 전 사장의 감독 시절, 현역에서 야구담당을 했던 데스크는 “김응룡 사장이 정말 많이 변했다”며 놀라워했다.

기자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이렇게 하여 이 인터뷰는 김응룡이라는 ‘살아있는 한국야구 전설’의 가족을 언론 사상 최초로 지면에 소개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제 힘껏 눈덩이를 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빠 불호령이요?
집에선 큰 소리 한번 안치셨죠
교육에 관해선 엄마께 100% 일임!
바빴던 아빠로선 그게 최선이었대요

하루도 빼먹지 않던 딸들과의 통화
딸 전시회 신문 기사까지 꼬박꼬박
무심함 속에 숨어있던 세심한 애정,
그게 바로 KS 12회 우승을 일군
한국야구 최고 명장의 비밀 아닐까요

7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아파트를 방문하니 김응룡 전 사장과 부인 최은원(71) 여사, 김혜성 씨, 김인성 씨 그리고 김인성 씨의 아들 박선호(3)군이 기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기 전 김 전 사장에게 “사장님과 감독님 중 어떤 호칭이 더 편하시냐”고 물으니 1초도 뜸들이지 않고 “나야 감독이 좋지”한다.

그래서 인터뷰는 ‘김 사장님’ 대신 ‘김 감독님’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김응룡 ‘감독’은 우리나라 ‘기러기 아빠’의 원조였다. 부인 최 여사와 두 딸이 1990년에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큰 딸 김혜성 씨는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으로 유명한 미술대학인 프랫(Pratt) 인스티튜트에서 순수미술과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했고, 귀국해 홍익대학교 영상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평택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둘째 딸 김인성 씨는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익숙한 세계적인 명문음대 줄리아드를 나온 플루티스트이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야구 감독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최은원(이하 최 여사): “이 애들은 ‘아빠가 누구’라는 소리를 제일 싫어했어요. 가끔 기자 분들이 취재를 하러 오면 미리 알고 도망갈 정도였죠. 신문에 자기들 이름 나오는 걸 굉장히 싫어했어요.”

김응룡: “애들은 내가 퇴장 당하는 게 신문에 나는 걸 제일 싫어했어.”

김혜성(이하 혜성): “사람들이 제가 잘 한 건 기억을 안 하고 못 한 것만 기억하더라고요. 그것도 ‘김혜성’이 아니라 ‘누구 딸’로만 기억했어요. 그게 정말 싫었죠. 그런데 어른이 되니까 솔직히 도움이 많이 돼요. 모르는 사람들도 금방 알아봐 주고.”

내내 눈을 깔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 슬그머니 펴진다.

해태 사령탑 시절의 김응룡 감독. 스포츠동아DB
해태 사령탑 시절의 김응룡 감독. 스포츠동아DB


- 김 감독님께서는 현역시절 호랑이로 불릴 정도로 굉장히 무서운 감독님이셨죠. 집에서도 호랑이 아빠셨나요.

혜성: “대부분 밖에서의 모습과 안에서의 모습이 다르잖아요. 엄격하진 않으셨어요.”

최 여사: “맞아. 엄격하지는 않았지.”

혜성: “우리 집은 엄마, 아빠가 친구 부모님들에 비해 자율적이셨어요. 공부하란 말씀도 안하시고.”

김인성(이하 인성): “연습하라는 얘기는 엄마가 많이 했잖아.”

최 여사: “그건 사실 돈 때문에 그랬어. 레슨비가 너무 비쌌거든.”

김응룡: “난 애들한테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 그런 여유가 어딨어. 나 하기도 바쁜데.”

혜성: 사실 우리는 아빠에게 혼나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안 믿더라고요.

최여사: “애들하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없었으니. 뭐 애들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 야단을 치지요.”

- 따님들이 다 훌륭하게 성장해서 뿌듯하시겠습니다. 요즘 말로 ‘엄친딸’들인데요. 특별한 교육법이라도 있었나요.

김응룡: “엄친딸이 뭐야? 난 전혀 모르고 애들 엄마가 다 했어. 1년에 집에 열흘도 안 있었으니까.”

최 여사: “애 아빠는 자기 일이 바빴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애들 교육은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맡아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같이 하면 꼭 싸움이 나더라고. 어차피 애 아빠는 그거(교육)할 사람이 아니니까 으레 내가 할 일이려니 하고 한 거지요.”

혜성: “엄마하고 아빠하고 우리가 어렸을 때에 합의를 보셨대요. 교육은 엄마가 알아서 하기로.”

가만히 듣고 있으니 ‘무관심한 아빠’에 대한 성토가 어느새 ‘아빠의 무관심이 성공교육의 비결’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렇듯 무관심한 아빠가 딸들에게 전화를, 그것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까.

혜성: “중학교 때부터 아빠가 매일 전화를 하셨어요. 미국에 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통화시간이 딱 3초예요. 전화 끊고 나면 주변에서 사람들이 ‘누구랑 통화한 거냐’고 물어봐요.”

김혜성 씨의 회고를 재구성해보면 부녀간에는 대략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딸: (따르릉) 여보세요?

아빠: 지금 뭐 공부하냐.

딸: 영어공부 해. (실은 수학책을 펴놓고 있음)

아빠: 그래. 영어공부만 열심히 해라. 뚜 … 뚜 … (벌써 끊었음)

- 왜 영어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신 건가요.

김응룡: “그야 내가 영어를 못 하니까.”

어쩐지 정세가 자신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간다고 느꼈는지 김응룡 감독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가족과 만나기 위해 금쪽같은 짬을 내 미국으로 날아간 김 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딸들에게 옷을 사주기 위해 백화점 쇼핑에 나섰다고
기자가 딸들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슬그머니 손자를 안고 사라졌던 김 응룡 전 사장은 이렇게 다른 방에서 손자에게 읽어 줄 동화책을 고르고 있었다. 용인|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기자가 딸들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슬그머니 손자를 안고 사라졌던 김 응룡 전 사장은 이렇게 다른 방에서 손자에게 읽어 줄 동화책을 고르고 있었다. 용인|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애들이 나를 끌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더라고. 100불짜리 옷을 만지작만지작하면서도 결국에는 10불, 20불짜리 하나 사더니 그만 됐다는 거야. 100불짜리를 못 사더라고 ….”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 딸들은 엄마와 아빠를 절반씩 닮았다. 큰딸은 외모는 아빠를 닮고 서글서글한 성격은 엄마를 닮았다. 반면 작은딸은 엄마의 얼굴을 빼닮았지만 말수는 아빠만큼이나 적었다.

- 아버지가 딸들 전시회나 연주회에 오신 적이 있나요.

혜성: “2년 전에 제 전시회에 오신 게 처음이었어요. 그때 스포츠동아에 전시회 기사가 실렸는데, 신문을 들고 오셨더라고요. 크크”

최 여사: “둘째가 플루트 부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는데 2007년에 귀국독주회 할 때 처음으로 갔어요. 그런데 잠깐 앉아 있다가 금방 나가 있더라고.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를 못 하는 성격이라.”

- 혹시 따님들이 프로야구 감독이나 선수와 결혼하겠다고 했거나,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응룡: “자기 좋으면 하는 거지 뭐.”

최 여사: “물론 자기가 좋으면 하는 거지만, 난 반대예요. 운동하는 사람 별로 안 좋더라고. 가정적이 아니잖아요. 언론에서 운동선수 아내들이 내조에 대해 얘기하는데, 사실 운동선수 내조가 제일 쉬워요. 내조할 게 없으니까.”

인터뷰가 끝나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김 감독 가족은 마치 사진관에 가족사진이라도 찍으러 나온 듯 화기애애하게 촬영에 응했다. “이왕이면 팔짱도 좀 껴보시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김 감독은 “으흠”하고 불편한 내색을 했지만 “나 팔짱 처음 껴 봐요”하고 최 여사가 팔을 껴오자 슬그머니 표정을 풀었다.

“여기까지 먼 길 와줘서 고맙다”며 김 감독이 아파트 밖까지 배웅을 나와 손을 내밀었다. 무심한 얼굴이지만 손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가족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무심해 보였지만, 그 속은 늘 가족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세심한 살핌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그 무심함 속의 세심함이야말로, 한국시리즈 12회 우승의 대위업을 일군 아버지의 진정한 힘이자 비밀이라는 것을.

글 : 용인 |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사진 : 용인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편집 :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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