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용병의 그림자, 나는 통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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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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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사+관광가이드+술친구+보디가드+훈련도우미+선수 부모 수발
현대캐피탈 안재웅 씨의 24시

현대캐피탈 용병 수니아스(왼쪽)의 통역 안재웅 씨(오른쪽)가 17일 수니아스의 부모에게 천안 유관순체육관을 안내하고 있다. 현대캐피탈 제공
현대캐피탈 용병 수니아스(왼쪽)의 통역 안재웅 씨(오른쪽)가 17일 수니아스의 부모에게 천안 유관순체육관을 안내하고 있다. 현대캐피탈 제공
“달수는 저 없이 못 살아요.”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통역 안재웅 씨(29)는 달수의 남자다. 달수는 캐나다에서 온 용병 수니아스의 애칭. 달라스 수니아스의 앞 글자를 땄다. 안 씨는 통역뿐 아니라 수니아스와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 운전사나 관광 가이드는 물론이고 술친구 역할도 한다. 안 씨와 동행하며 통역의 하루를 지켜봤다.

○ 용병 부모님 챙기는 것도 일

17일 경기 용인에 있는 현대캐피탈 숙소를 찾았다. 마침 안 씨와 수니아스가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에 왔다. 그들은 다음 날 천안에서 치를 삼성화재전에 대비해 비디오 전력 분석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안 씨는 점심식사를 마친 뒤 낮잠을 자거나 쉬러 간 선수들을 뒤로하고 홀로 짐을 꾸렸다. 숙소에서 30분 떨어진 경기 수원의 한 호텔에 묵고 있는 수니아스의 부모를 데리고 천안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호텔에 도착하자 수니아스의 아버지 로드니 씨(72)와 어머니 베버리 씨(57)가 안 씨를 반겼다. 15일 한국에 온 이들의 모든 일정도 안 씨가 챙겨야 한다. 천안으로 향하는 1시간 동안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베버리 씨는 “캐나다 전투 기념비가 있는 가평이란 데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의 부친이자 수니아스의 외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였다.

○ 선수의 꿈은 접었지만…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는 미리 도착한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안 씨는 바로 코트로 들어가 훈련을 거들었다. 스파이크 연습을 하는 수니아스에게 공을 올려주기도 했다. 배구선수 출신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2006∼2007시즌 드래프트에서 현대캐피탈은 안 씨를 지명했다. 3년 계약을 했지만 무릎 부상으로 1년 만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다행히 안 씨는 사우디아라비아 배구 대표팀 감독이었던 아버지 안병만 씨(57)를 따라 7년 동안 중동에서 살면서 국제학교를 다녔기에 영어에 능통했다. 그는 다른 구단의 통역과 마찬가지로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계약직원이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직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 용병의 그림자… 사생활은 없어

통역은 용병의 그림자다. 안 씨는 수니아스가 숙소 밖으로 나갈 때마다 동행한다. 외박도 같이하며 같은 호텔에 묵는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수니아스의 술친구 역시 그다. 안 씨는 “수니아스는 한국 생활의 90%를 나와 보냈을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안 씨 본인의 사생활은 없다. 시즌 중엔 한 달에 한 번도 집에 못 갈 때가 많다.

결혼한 용병을 맡으면 다를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여자부 인삼공사 몬타뇨의 통역인 최경아 씨(27)는 2007∼2008시즌 GS칼텍스 용병 하께우(34·브라질)를 맡았다. 당시 결혼해 남편과 함께 숙소에 있던 하께우였지만 “밤에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항상 통역이 옆에 있어야 한다”며 최 씨를 시즌 내내 자기 집에 살게 했다. 대한항공 통역 김현도 씨 역시 “용병은 총각이나 유부남이나 다를 게 없다. 어차피 항상 붙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용인·수원·천안=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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