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원년과 최초 경기 정확한 조사로 수정되어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12월 27일 07시 00분


■ 손환 교수 특별기고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는 2005년 3월 31일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국내외 유명인사와 체육인, 원로 야구인들이 모인 가운데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선교사로 한국에 야구를 전한 필립 질레트의 외손자 로렌스 허바드가 참석해 공로상을 받았다. 이처럼 한국야구의 원년은 1905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체육사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나현성(한국운동경기사, 1958)의 주장에 의해서였다. 이후 한국야구사에서는 그의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정설이 됐다. 그러면 그는 어떤 근거로 한국야구의 원년을 1905년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 근거는 1932년 발행된 오시마(大島勝太郞)의 ‘조선야구사’를 인용하고 있는데 실제로 거기에는 1904년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야구의 원년은 나현성과 오시마 사이에 1년의 착오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이러한 1년의 착오가 생긴 것일까? 그 이유는 오시마가 주장하고 있는 메이지 37년(1904년)을 서력으로 계산할 때 1년의 오류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1904년을 한국야구의 원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또다른 자료는 1930년 4월 2일 동아일보에 연재한 이길용의 ‘조선야구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현재 한국야구사에서 1905년이라고 되어 있는 한국야구의 원년은 1904년으로 수정되어져야 하며 이러한 사실을 더욱 더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필립 질레트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야구사에서 최초의 야구경기는 나현성(한국운동경기사, 1958)의 주장에 따라 1906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와 덕어학교의 경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천야구백년사 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인천야구 한 세기’(2005)에 따르면 인천영어야학교(인천고 전신) 1학년이었던 일본인 학생 후지야마(藤山藤芳)의 일기가 소개되어 있는 ‘인고백년사’를 인용해 1899년 2월 3일에 한국 최초의 야구경기가 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 최초의 영자신문이면서 독립신문의 영문판인 ‘The Independent’를 보면 1896년 4월 25일 미국해병대원과 서울거주 미국인의 야구경기를 홍보하고 있으며 이날의 경기결과를 동년 4월 28일자에 보도하고 있다. 이후 동년 5월 2일(미국해병대원과 서울거주 미국인), 5월 9일(서울거주 미국인과 영국인), 6월 23일(미국해병대원과 서울거주 미국인) 등 계속해서 야구경기가 개최된 것을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한국 최초의 야구경기는 1896년 4월 25일에 개최된 미국해병대원과 서울거주 미국인의 경기로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특기할만한 내용은 1896년 6월 23일에 개최된 야구경기에서 서울거주 미국인팀이 ‘Seoul Athletic Club’이었는데 이 팀의 중견수가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박사로서 그의 영어 이름인 ‘Philip Jaisohn’이 명단에 나와 있다. 서재필 박사는 한국인으로서 처음 야구경기를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초창기 야구경기는 한국인들에게 근대스포츠의 존재를 알림과 동시에 관중의 역할로서 처음으로 야구라는 서구의 근대스포츠문화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손환|사단법인 한국야구발전연구원 연구위원·중앙대 체육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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