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미영의 꿈이 묻힌 곳… 아무도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 Array
  • 입력 2011년 9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원정대 4信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대원들이 25일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 앞을 날고 있다. 봉우리들이 루팔벽 양옆으로 호위하듯 늘어서 
있다. 4500m의 절벽인 루팔 벽은 험난하기로 이름 높지만 일대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낭가파르바트=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대원들이 25일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 앞을 날고 있다. 봉우리들이 루팔벽 양옆으로 호위하듯 늘어서 있다. 4500m의 절벽인 루팔 벽은 험난하기로 이름 높지만 일대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낭가파르바트=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떨어지면 그냥 죽을 것 같은 수백 m 절벽 위 좁은 길. 천길 낭떠러지 밑 강물은 온통 흙탕물이었다. 끊임없이 요동치며 흘러갔다.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원정대원(대장 박정헌)들은 험한 길을 몇 번이고 지나 ‘죽음의 산’으로 불리는 파키스탄 북부 낭가파르바트(8126m)에 도착했다. 20일 오후 산 아래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 거대한 산은 짙은 구름에 가려 있었다. 얼굴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다.

이튿날 강렬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낭가파르바트의 수문장 격인 루팔 벽이 하늘 꼭대기까지 버티고 서 있었다. 루팔 벽은 4500m나 되는 수직 벽이다. 눈앞에서 곧바로 하늘로 뚫고 오를 듯이 서 있는 그 거대한 벽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숨져 갔던가. 낭가파르바트는 현지어로 ‘벌거벗은 산’이라는 뜻이지만 산악인들 사이에서 ‘죽음의 산’으로도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독일 등반사상 최악의 참사가 낭가파르바트에서 일어났다. 1934년 빌리 메르클이 이끄는 독일 원정대 10명 전원이 사망했고 1937년에는 독일 대원 16명이 숨졌다. 1970년 산악계의 전설인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도 이곳에서 등반 파트너였던 동생을 잃었다. 여성 최초로 8000m급 14좌 완등에 도전하던 한국의 고미영도 2009년 7월 이곳에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이번 원정대의 박정헌 대장은 1997년 낭가파르바트를 등정했다. 대원 중 여러 명이 고미영 씨와의 추억 한 자락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침묵 속에서 각자 이 산에서 사라진 여성 산악인을 되새겼다. 누구에게나 쾌활하고 편하게 대해 주었던 고인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다니.

대원들은 낭가파르바트 일대를 비행하며 전진을 계속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폴로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폴로는 말을 타고 벌이는 하키와 비슷한 경기다. 자동차로 찾아간 곳은 라마 호수 근처 해발 3482m에 위치한 폴로경기장이었다. 100년 넘게 묵은 듯한 아름드리 소나무와 삼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이 숲속에서 오랜 만에 늦잠을 잤다.

25일 오전 눈을 뜨니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원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여성들과 활기 넘치는 표정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낭가파르바트 아래 마을 타르싱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폴로경기장.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대원들이 하늘에서 내려오자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낭가파르바트 아래 마을 타르싱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폴로경기장.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대원들이 하늘에서 내려오자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때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는 빨간 패러글라이더. 원정대의 홍필표 대원이 곡예비행을 하며 내렸다. 폴로축제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뒤이어 박 대장이 내리자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박수치고 환호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들자 경찰들이 초비상 상태였다. 이어 함영민 대원이 여러 차례 아찔한 묘기를 보인 뒤 잔디밭에 내리자 함성은 절정에 이르렀다. 홍대원은 “20년 넘게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외국에도 여러 번 다녔지만 이런 열렬한 환대는 처음”이라며 싱글벙글했다.

깜짝 행사의 주인공이 된 대원들은 현지인들로부터 귀빈석으로 안내받아 폴로경기를 즐겼다. 때로 생명을 앗아가는 거대한 산 밑에서도 생명은 약동하고 있었다.

낭가파르바트=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