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덕아웃 이야기] 프로 10년만에 찾아온 1군 문규현의 야구가 시작됐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8월 4일 07시 00분


“너, 야구 해볼래?” 초등학교 3학년 꼬마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야구’가 뭐 하는 건지도 잘 몰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왠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으로 손에 쥐어 본 흰 공의 감촉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롯데 문규현(28·사진)의 아버지 문시창(51) 씨는 벽돌 찍는 공장을 운영했다. 그리고 공장 앞마당에서 아들과 처음으로 캐치볼이라는 것을 해봤다가 제법 그럴싸한 폼에 놀랐다. 글러브에 꽂히는 느낌도 왠지 남다르게 느껴졌다.

중학교 때까지 야구 선수였던 문 씨가 아들의 재능을 단박에 알아본 것이다. 그 길로 문규현은 야구부가 있는 군산초등학교로 전학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진학하려다 꿈을 접어야 했던 군산상고 야구부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순탄치 않았다. 2002년 2차 지명 10번으로 간신히 롯데의 선택을 받았고, 출발부터 2군이었다. 그래도 문규현은 “그 때 공필성 코치님을 만난 게 행운이었다”고 했다. “코치님은 처음 지도자가 되셨고, 저도 신인이었잖아요. 운동을 얼마나 많이 시키셨는지 몰라요. 코치님이 1군에 올라가신 후에도 늘 ‘언제든 기회를 잡을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라’라고 당부하시곤 했죠.”

공 코치가 말하던 ‘때’는 입단 10시즌 째인 올해에 찾아왔다. 물론 쉽게 잡은 기회는 아니다. 문규현은 지난 시즌 직후 마무리 훈련을 떠났고, 돌아온지 사흘 만에 다시 호주행 비행기에 올라 현지 리그에서 선수로 뛰었다.

그리고 올해 초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전지훈련 짐을 쌌다. 하지만 그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고 했다. “어렵게 1군에 남았는데, 5∼6월에 성적이 바닥을 치니까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요.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날아가면 어쩌나 싶어서요.” 훈련 한 번을 해도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집중해서 하려고 했기에 더 그랬다.

다행히 그에게는 7월이 기다리고 있었다. 롯데의 약진을 뒷받침한 복병이 된 것이다. 양 감독이 “이대호조차 부진했을 때 문규현이 있어서 상승세를 이어갔다”고 평가할 만큼. 아들이 부진할 때 전화 한 번 마음대로 못 하던 아버지도 이제 ‘잘 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종종 보내온다.

문규현의 꿈은 그리 원대하지 않다. 은퇴 후 부산에, 그리고 롯데에 이름 석 자를 남기는 게 전부다. 그동안 누군가의 빈 자리를 채우면서 살았지만, 이제 그에게도 처음으로 자신의 자리가 생겼으니 더 그렇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적어도 첫 걸음은 뗐다. 롯데가 발행한 8월 경기 포스터 모델은, 9번 타자 문규현이다.

배영은 기자(트위터 @goodgoer)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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