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캡틴… 김재현 마지막까지 불꽃투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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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역전결승타 등 맹위 “좋은 팀-선수들과 함께해 행복”

SK ‘캡틴’ 김재현(35·사진)은 자존심이 강한 남자다. 1994년 LG 입단 후 올해까지 17년간 그는 자존심 하나로 야구를 했다.

잘생긴 외모에 빼어난 실력까지 갖춘 그는 LG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입단 첫해부터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고 그해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SK로 옮긴 뒤에도 2007년과 2008년에 챔피언 반지를 꼈다.

영광으로 가득한 야구 인생을 보낸 그에게도 두 번의 은퇴 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엉덩관절(고관절) 부상을 당했던 2002년이다. 그해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보여준 그의 투혼은 아직도 많은 이의 뇌리에 남아 있다.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6회 대타로 나서 좌중간을 꿰뚫는 2타점 적시타를 쳤다. 하지만 이듬해 그에게 돌아온 것은 구단의 은퇴 종용이었다.

구단과 지루한 연봉 협상을 벌이던 그는 2003년 7월에야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구단의 요구에 따라 ‘본인 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진다’는 각서를 쓰고 나서였다. 반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그는 그해 홈런 6개를 치며 부활했다.

두 번째 은퇴 위기는 SK 시절이던 2007년이었다. 새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김재현을 엄하게 대했다. “타석에서 성의가 없다”는 이유로 전 선수단 앞에서 호된 꾸지람을 하기도 했다. 2군을 오르내리며 제대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김재현은 은퇴를 생각했다. 당시 그를 다잡아준 사람은 아내 김진희 씨였다. 정규 시즌에서 1할대 타율에 그쳤던 그는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결승타 2개와 홈런 2개를 치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세 번째 은퇴 얘기는 본인 입에서 나왔다. 지난해 KIA와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그는 “내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국내 프로 스포츠 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예고 은퇴’였다. 올 시즌 그는 타율 0.288에 10홈런, 48타점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무엇보다 팀의 주장이자 리더로서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빛났다. 15일 1차전에서는 역전 결승타 포함 3타점을 쳤고, 18일 3차전에서는 1회 밀어내기 볼넷으로 타점을 올렸다.

그는 “이렇게 좋은 팀에서 이렇게 좋은 선수들과 함께 야구를 했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했다. 내가 빠지면 최소한 1명이 더 1군에서 뛸 수 있다. 내가 누렸던 행복을 후배들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은퇴를 번복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지만 그는 생애 마지막 우승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다. 이 역시 김재현답다. 지난 17년간 팬들은 그가 있어 행복했다. 굿바이∼ 캡틴.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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