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KIA 김선빈 “164cm 땅꼬마? 야구를 키로 합니까?”

동아닷컴 입력 2010-09-25 07:00수정 2010-09-2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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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키’ 편견 이겨내고 쓴 성공 스토리
김선빈은 고교 2학년 때부터 청소년 대표에 선발됐지만 키가 작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구단에서 외면받았다. 그러나 투수에서 유격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 당당히 주전으로 올라섰다. 스포츠동아 DB
청소년국가대표였던 내가 KIA 6순위 지명

“날 닮아 미안해” 아버지 말씀에 주먹 불끈

우상 손시헌보며 야수로 새로운 인생 출발

땀으로 일군 주전…1호 홈런은 값진 보물
2007년 8월 16일 제 7회 아시아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두고 건국대에서 훈련 중이던 국가대표 선수들이 휴게실 한 편에 있는 컴퓨터 앞으로 모였다. 2명뿐인 2학년 안치홍과 성영훈, 이미 1차 지명에서 삼성과 KIA의 부름을 받은 우동균, 전태현, 그리고 대학으로 진로를 정한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모니터를 쳐다봤다. 전국에서 야구를 제일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인 청소년국가대표. 프로지명은 당연, 관심은 그 순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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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에 자리 잡은 화순고 투수 김선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해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5순위 지명이 끝날 때까지 40명이 프로에 지명되는 동안 김선빈의 이름은 없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164cm. 야구선수는 물론 투수로는 키가 너무 작은 것 아니냐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순간 KIA가 6순위, 2차 지명 전체 마흔 세 번째로 ‘화순고 김선빈’의 이름을 불렀다.

김선빈은 고민했다. 차라리 대학에 가서 4년 더 노력하면 좀 더 인정을 받고 프로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날 화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네 인생이다. 이제 스스로 결정할 나이다. 다만 어떤 쪽을 택하든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잠시 침묵 후 조용히 한마디를 더했다. “미안해…. 아빠를 닮아 작은 키. 미안하다, 선빈아.”

○나를 닮아 작은 키, 미안하다 아들아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강해지기로 했다. 먼저 주위에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키가 작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에 또다시 프로에 지명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고향 팀이기 때문에 빨리 적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하자”며 주먹을 꼭 쥐었다. 붉은 색 유니폼을 받아 입고 시작한 훈련. 그러나 새로 취임한 조범현 감독은 김선빈에게 야수전향을 권한다. 작은 키가 투수로는 큰 약점이 될 수 있지만 야수로서는 큰 흠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김선빈은 망설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투수에 주력했었다.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유격수를 봤지만 프로에서 내가 야수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런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컸다.” 그러나 김선빈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프로선수 손시헌의 포지션 유격수. 자신의 우상처럼 그 곳에서 새로운 꿈을 품었다.

○손시헌을 보며 꿈을 품다

김선빈이 두산 손시헌을 처음 본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작은 키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3루 쪽으로 강하게 빠지는 타구를 잡아 1루에 그림같이 송구하는 모습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프로에서 저런 플레이를 하다니! 나도 모르게 꼭 저런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투수 글러브를 한 쪽으로 치우고 다시 낀 내야 글러브와 배트.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가장 늦게까지 열심히 훈련했다. 그러자 조금씩 ‘화순의 야구 천재 유격수’소리를 듣던 예전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범현 감독은 고졸 신인에게 거의 풀타임 1군 엔트리를 보장했다. 2008년 112경기, 71안타 타율 0.255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다시 2군으로, 그리고 한국시리즈 엔트리 탈락

2009년 KIA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김선빈은 그날 잠실에 없었다. 청소년대표 출신 내야수 안치홍은 입단하자마자 2루에 자리를 잡았다. LG에서 김상현이 이적하면서 이현곤은 3루에서 유격수로 자리를 옮겼다. 베테랑 김종국에 박기남까지 KIA 내야에 김선빈이 설 곳은 없었다.

○편견과 싸워 이긴 2010년

시즌 초 KIA는 김상현이 부상으로 빠지자 이현곤이 3루, 김선빈은 유격수를 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반기 김상현이 돌아왔지만 김선빈은 다시 백업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사이 3년 전 다시 배트를 잡으며 다짐했던 첫 목표, 100안타와 20도루를 달성했고 2할 9푼 이상 타율을 꾸준히 유지했다. 모두 키가 작아 안 된다고 했지만 당당히 땀으로 일궈낸 주전 자리, 그리고 100안타. 9월 7일 중학교 3학년 이후 처음으로 터트렸다는 프로 통산 1호 홈런은 그동안의 노력에 보답하는 값진 선물이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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