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전인미답의 길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3일 05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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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57)이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국내 감독 월드컵 본선 첫 승과 사상 첫 원정 16강.

한국이 23일 남아공 더반의 모세스 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B조 마지막 경기에서 나이지리아를 2-2로 비기면서 아르헨티나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면서 허 감독은 다시 한번 한국 역사를 바꿨다. 17일 그리스를 2-0으로 잡으며 국내 사령탑으로 월드컵 사상 첫 승리를 거뒀고 이젠 그 어떤 감독도 가지 못했던 원정 16강이란 전인미답의 길을 걸은 것이다.

허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사무친 한(恨) 세 가지를 털어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포함해 7차례 본선에서 한국 사령탑으로 단 한번도 거둬보지 못한 승리를 이번 월드컵에서야 거뒀다. 그 중심에 허 감독이 있었다. 월드컵 본선 무대 진출 56년 만에 이뤄낸 성과가 허 감독의 몫이 됐다. 허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2000년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나 월드컵 호를 두 차례 외국인 감독에게 내준 뒤 되찾아 처음 출전한 무대에서 전인미답의 길을 뚫어 토종 사령탑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젠 굳이 외국인 감독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 하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4강 신화를 이룬 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작은 장군' 딕 아드보카트 감독도 하지 못한 원정 16강을 이뤘다는 것이다.

허 감독은 1998년 올림픽 및 대표팀 감독에 올라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그해 아시안컵에서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밀려났다. 공교롭게도 허 감독 이후 2001년 초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뒤 움베르토 쿠엘류, 조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까지 줄곧 외국인이 한국축구를 쥐고 흔들었다. 히딩크 감독은 16강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4강까지 끌어 올렸다. 2007년 말 베어벡 감독이 떠나며 다시 국내파로 지휘봉이 돌아오며 허 감독이 맡았으니 그로선 "역시 국내파는 안돼"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총력전을 벌였다. 그 결과로 국내파 사령탑 월드컵 첫 승과 사상 첫 원정 16강이 나온 셈이다.

허 감독의 전술도 빛났다. 허 감독은 나이지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세트피스로 승부가 갈릴 것으로 전망하고 상대 세트피스를 막는 법과 우리가 세트피스로 골을 잡아내는 훈련을 많이 시켰다. 결국 한국은 이날 이정수와 박주영이 세트피스로 골을 터뜨려 극적인 역전을 만들었고 결국 동점으로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더반=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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