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연장 접전 끝에 우승…개인 통산 25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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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7일 0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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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과 눈물이 뒤섞여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후배들은 몰려나와 샴페인과 맥주를 쏟아 부었다.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이었나. 그 맛은 황홀하기만 했다. 박세리(33)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극적인 부활이었다. 지난 2년 10개월 동안 55개 대회에 출전하고도 트로피가 없었다. 무관의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박세리는 다시 일어섰다. 17일 미국 앨라배마 주 모빌의 매그놀리아 그로브 골프장(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벨 마이크로 클래식.
박세리는 18번 홀(파4·402야드)에서 열린 3번째 연장전에서 극적인 버디를 낚아 우승했다. 2007년 7월 제이미 파 오웬스 코닝 클래식 우승 이후 오랜 침묵을 깼다. 통산 25승째.
박세리는 브리타니 린시컴(25·미국), 수잔 페테르센(29·노르웨이)과 공동 선두(13언더파)로 4라운드에 들어갔다. 경기 초반 흐름은 좋지 않았다. 박세리는 3번 홀까지 1타를 잃어 단독 선두에 나선 린시컴에 2타 뒤졌다. 이 때 하늘이 도왔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4라운드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장타자인 린시컴, 페테르센보다 거리가 뒤지는데다 전날 밤 101mm의 비가 내려 페어웨이가 흠뻑 젖은 상황. 게다가 체력도 열세. 여러모로 불리했던 박세리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우승자는 세 명의 연장전으로 가려지게 됐다. 페테르센이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보기를 해 먼저 탈락했다. 운명의 연장 세 번째 홀. 박세리의 드라이버 티샷은 오른쪽 페어웨이 벙커에 빠졌다. 린시컴의 티샷은 페어웨이에 안착. 박세리는 170야드를 남기고 6번 아이언으로 한 벙커샷이 핀 3m에 떨어졌다. 여유를 보이던 린시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8번 아이언으로 한 두 번째 샷은 디벗을 깊게 내며 벙커에 빠졌다. 린시컴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3온에 이어 내리막 5m 거리의 만만치 않은 파 퍼트에 성공했다. 연장전에서 통산 5전승으로 승률 100%를 기록하고 있던 승부사 박세리는 버디 퍼트를 기어이 컵에 떨어뜨린 뒤 오른 손을 번쩍 들었다. 존경하던 선배를 응원하기 위해 6시간 넘게 기다리던 '세리 키즈' 신지애(22), 양희영(21), 최운정(19)은 그린으로 달려가 얼싸안으며 우승 세례를 했다.
항공편까지 취소하며 응원한 신지애는 "세리 언니가 우승하는 장면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굉장히 영광스럽고 뿌듯했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페테르센이 우승했더라면 신지애는 2주 만에 세계 1위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박세리가 그의 여왕 자리를 지켜준 셈.
박세리의 우승 소식을 접한 최경주는 "실력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기회가 오면 잡기 마련이다. 마음고생도 해갈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시련이 찾아와도 오뚝이처럼 일어난 희망의 전도사였다. 2004년 미켈럽울트라오픈 우승으로 명예의 전당 가입 포인트를 채운 뒤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렸다. 2005년 우승 없이 평균 타수가 74.21타까지 치솟으며 상금 랭킹은 102위로 처졌다. '목표를 상실한 박세리는 이젠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다. 정신력을 키우려고 태권도와 킥복싱까지 한 끝에 2006년 맥도널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그린에서 펄쩍 뛰며 눈시울을 붉혔다.
2007년 우승 후 그는 자신의 영향으로 골프에 매달려 성공 시대를 연 후배들을 격려하는 역할에 치중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땀을 흘렸다. 지난해 후반부터 찾아온 퍼트 난조를 극복하기 위해 전담 코치까지 둘 정도로 의욕을 보였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그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내와 훈련뿐이었죠. 우승을 많이 했지만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입니다."
이번 우승으로 박세리는 박수 받으며 떠나고 싶다는 자신의 향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됐다. 20대 중반만 넘어서면 기량이 쇠퇴하기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에도 충분하다.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에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된 박세리. 새로운 골프 인생은 벌써 시작된 지도 모른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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