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용 ‘세 날개’로 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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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성격-근성으로 EPL서 5골 5도움
“경기 ‘지배’한 건 그가 처음”

1. 머리가 좋다- “IQ 150”… 전술 이해력 탁월
2. 성격이 좋다- 침착-대범… 압박에 안 흔들려
3. 근성도 좋다- 기성용도 두손 든 연습벌레

“저런 선수가 있었나.”

셰놀 귀네슈 감독(전 FC 서울)은 2007년 그를 처음 본 뒤 이렇게 말했다. 화려한 발재간, 간결한 볼 터치, 넓은 시야. 귀네슈 감독은 훈련이 끝난 뒤 그를 따로 불렀다. “훈련을 열심히 해라. 곧 기회를 주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네슈 감독은 약속대로 그에게 선발 공격수란 중책을 맡겼다. 당시 19세였던 앳된 얼굴의 청년은 이후 K리그 명문 팀 서울에서 부동의 측면 공격수로 자리 잡았다. 대표팀에도 뽑혔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앞으로 10년 넘게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대들보”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 박지성 공격포인트 기록 넘어서

‘블루 드래건’ 이청용(22) 얘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의 이청용이 27일 번리와의 정규리그 홈경기에 선발 출전해 전반 34분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공격 포인트 10개(5골 5도움)로 2005∼2006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2골 7도움)과 2006∼2007시즌 레딩 설기현(4골 5도움·현 포항)이 세운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 기록을 넘어섰다. 5골은 박지성의 2006∼2007시즌(5골 2도움) 기록과 타이.

“해외에서 잘한 선수는 많았지만 경기를 ‘지배’한 선수는 청용이가 처음이죠.” 이청용을 오랫동안 지켜본 최용수 코치(서울) 얘기다. 그의 말대로 이청용의 플레이는 뭔가 다르다. 물 오른 득점, 어시스트 감각도 그렇지만 그의 플레이는 잉글랜드 현지 언론에서도 “화려하고 세련된 기술 축구”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청용이 이런 평가를 받게 된 이면엔 그의 남다른 재능이 있다. 이청용은 육상 선수를 한 아버지의 운동 신경을 물려받았다. 머리도 좋다. 아버지 이장근 씨는 “청용이가 축구하는 걸 말리고 싶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IQ도 150 가까이 됐던 걸로 기억한다”며 웃었다.

이청용은 운동 지능도 우수하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이청용은 어느 팀에 들어가도 팀플레이나 전술에 잘 녹아든다”며 “감독이 원하는 걸 재빨리 알아채고 경기를 하는 영리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 축구밖에 모르는 ‘애늙은이’

이청용은 말수가 적다. 얼핏 보기엔 내성적이고 소극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이청용은 “성격이 낙천적이라 작은 실수는 빨리 잊는 편”이란 말을 자주 한다. 그의 에이전트인 티아이스포츠 김승태 대표는 “청용이는 나이답지 않게 침착하고 대범하다. 대화를 하다 보면 ‘애늙은이’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성격은 경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청용은 K리그 시절부터 ‘슬럼프가 길지 않은 선수’로 유명했다. 상대 수비수들의 압박 속에서도 자기 플레이를 하는 건 침착한 성격이 한몫을 했다는 평가다.

이청용은 최고의 활약을 펼친 뒤에도 언제나 부족하다고 스스로 질책한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이청용은 언제나 겸손하게 자기를 바라볼 줄 안다. 다른 선수들의 장점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그가 흘린 땀. 이청용은 축구밖에 모른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프로팀(서울)에 입단할 때도 그는 “축구에 인생을 걸었기에 졸업장엔 미련 없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프로팀에 입단해 기본기를 닦고 프로 마인드까지 익혔기에 그는 가장 적응하기 힘들다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데뷔 시즌 팀의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의 한 코칭스태프는 이렇게 말했다. “기성용(셀틱)이 쉬는 날에도 운동장에 나와 개인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을 했죠. 그 기성용이 혀를 내두른 선수가 바로 이청용입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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