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한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눈만 감으면 곯아떨어지던 시절에는 전혀 몰랐던 어둠 속을 무던히도 헤매야 했다. 혹시 잠이 들었나 싶어 눈을 떠봤을 때, 눈이 딱 떠질 때의 허탈함이란 정말이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잠 못 드는 밤을 경험하면서 나는 세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잠드는 것도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20분 넘게 잠이 오지 않으면 차라리 일어나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낫다는 점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누워 있어 봤자 결과는 뻔하다. 꿈나라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허망함에 시달린다. 마지막은 불면증의 주범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이라는 점이다. 깊은 산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은 비슷한 패턴을 겪는다. 헤매고 헤매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패턴을 반복한다. 불면도 비슷하다. 정신이 맑은 대낮에 떠올리면 무슨 생각으로 했는지 떠오르지도 않는 영양가 없는 잡생각들의 숲을 밤새워 헤맨다. 했던 생각을 또 하고 또 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제자리 돌기를 한다. 그러니 차라리 일어나 버려야 한다.
인지신경과학자인 마이클 가자니가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UCSB) 명예교수가 동료와 함께 진행한 실험이 있다. 자연계 최고의 지능을 가진 인간과 비둘기가 확률 추측 게임을 하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인간일 것 같지만 결과는 달랐다. 비둘기가 이겼다.
실험 내용은 단순하다. 왼쪽에는 빨간불, 오른쪽에는 초록불이 있고 둘 중 한 번에 하나만 켜진다. 두 개의 불 중 어느 것이 켜질지 맞히는 게임이다. 연구팀은 빨간불이 80%, 초록불이 20%의 비율로 켜지도록 설정했지만 참여자들은 그 비율을 모른다. 순서도 무작위다.
인간의 반응은 비슷하다. 빨간불이 다섯 번쯤 켜지면 서너 번은 초록불이 켜질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결과 정답률은 68%에 그쳤다. 비둘기는 다르다. 어느 순간 빨간불이 더 자주 켜진다는 것을 감지하면 계속 빨간불만 선택한다. 확률이 높은 쪽을 최대한 고르는 것이다. 그래서 정답률이 80%나 된다. 거의 전부 맞힌다. 인간의 정답률과는 12%포인트 차이, 인간의 완패다.
지능으로 보면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 지능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현상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빨간불이 다섯 번이나 켜졌으니 이번에는 초록불이 나올 차례라고 생각한다. 지능이 높아 똑똑하지만 바로 이 지능 때문에 헛똑똑이가 된다. 때로는 비둘기처럼 별 생각 없이 행동해야 할 때도 있는데 이럴 때조차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잠 못 이루는 밤에 하는 생각들처럼 말이다.
한때 세계 ‘피겨 퀸’이라 불렸던 김연아가 스무 살 무렵 이런 말을 했다. 경기 전 스트레칭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했다. 다른 뛰어난 선수들도 가끔 하는 말이다. 그렇다. 생각하지 말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그냥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냥 생각 없이 해야 할 것과 생각하면서 해야 할 것을 아는 게 진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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