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줄’ 좋은 ‘홍명보의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8일 14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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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5월 10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포항-유공의 경기. 포항이 하프라인 근처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키커는 당시 포항 소속이던 홍명보.
그는 볼에서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가 달려들며 강한 슛을 날렸고 총알처럼 날아간 볼은 그대로 유공 골문에 꽂혔다.

프로축구연맹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이날 홍명보의 골은 무려 47m 장거리 슛에 의한 것이었다.
축구장의 가로 길이가 105~110m 이니 거의 경기장 가운데서 차 넣은 셈.

현재 한국청소년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이 현역 시절 월드컵에 4번이나 출전을 하고 '영원한 리베로'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원동력 중의 하나가 바로 뛰어난 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인들이 '볼 줄'이라는 말을 쓸 때가 있다. 여기서 볼 줄은 킥이나 패스를 할 때 볼이 날아가는 것을 줄에 비유한 것. 팽팽한 빨래 줄처럼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그리고 멀리 목표 지점으로 볼이 패스나 슈팅이 될 때 "볼 줄이 좋다"라고 표현한다.

홍 감독은 국내에서 가장 볼 줄이 좋은 키커였다. 수비수이면서도 플레이메이커를 맡는 등 포지션이 없는 리베로(자유인)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킥이 좋아서였다.

홍 감독의 현역 시절 멋진 플레이 장면. 하프라인 부근까지 슬슬 볼을 치고나오다 발목 스냅을 이용해 볼을 한번 접으면 상대 수비수들도 그쪽 방향으로 쏠린다. 이 때 대각선 방향으로 수십m 떨어져 있는 동료 선수를 향해 길고 빠르게 볼을 차주면 골 찬스가 만들어 지곤 했다.
패스뿐 아니라 슈팅에서도 볼 줄이 좋은 그는 월드컵 본선에서만 2골을 넣어 황선홍 유상철 안정환과 함께 한국 선수 중 득점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이집트에서 열리고 있는 2009 세계청소년(20세 이하) 축구선수권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청소년대표팀 21명의 '작은 태극전사들'.

선수들은 지도자를 닮는 법일까. 이번 태극전사들은 역대 어느 청소년대표 보다 볼 줄이 좋다.
3골을 넣은 김민우를 비롯해 김보경 구자철 박희성 이승렬 김동섭 조영철 등 공격수나 미드필더들은 과감하고 강력한 슛이 돋보이고 코너킥이나 센터링 때의 볼 줄도 좋다. 여기에 윤석영 김영권 홍정호 등 수비수들도 전방을 향해 한번에 넣어주는 긴 패스가 상대 골문 앞에 있는 공격수들에게까지 정확하게 전달될 정도로 좋은 볼 줄을 갖고 있다.

한국청소년대표팀이 9일 오후 11시30분(한국시간) 4강 진출권을 놓고 '아프리카의 강호' 가나와 맞붙는다.
홍명보 감독은 "가나는 공격력이 좋고 공격수들의 개인 능력이 뛰어나다. 한마디로 저돌적인 팀"이라고 말했다.

'저돌적인 팀'이라는 표현에는 가나 선수들이 투지가 넘치고 플레이가 다소 거칠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저돌적인 팀에게는 강한 슈팅으로 초반부터 상대의 기를 제압하는 게 특효약이다.

9일 밤. 태극 전사의 발끝을 떠난 볼이 가나 골문에 철렁 꽂히는 순간 여기저기서 터질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권순일 동아일보 스포츠사업팀장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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