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운동 안하는 공부벌레가 더 문제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13일 1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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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학기말 시험이 있는데 좀 갔다 와도 될까요."
"응, 다녀와."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1회 월드컵축구대회.

아르헨티나축구대표팀은 조별 예선에서 프랑스를 1-0으로 물리친 뒤 멕시코와의 2차전을 앞두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팀 주장이자 주전 공격수인 페레이라가 하루는 감독 방을 찾아와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했다.

"대학 학기말 시험이 있는데 잠시 가서 시험을 치고 와도 되겠습니까."
아니, 월드컵 대회 기간 중 대표팀 주장이 시험 때문에 빠지겠다니….
그런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시험 잘 치고 와라."

페레이라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시험을 치렀고 멕시코와 칠레 전에 불참한 뒤 미국과의 준결승전부터 복귀했다.
축구대표팀의 주장을 맡을 정도로 운동도 잘하면서 대학에서 일반 학생들과 함께 시험을 쳐 경쟁을 할 정도로 공부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런 상황은 요즘 같아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대표팀 선수가 될 정도면 축구 잘하는 순위를 매길 경우 그 나라에서 20~25위 안에는 들어야 한다. 축구대표가 아니라 먼저 프로 선수가 되서 주전으로 뛰기도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다.
운동만 열심히 해도 프로 선수가 되기 힘든 판이니 고교나 대학에서 공부는 아무래도 등한시할 수밖에 없어 '공부안하는 운동선수'가 최근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시대는 어느 분야든 '프로'만 각광을 받는다.

공부에도 프로가 있고 국가대표도 있다. 소위 '공신(공부의 신)'이라고 불리는 각 학교에서 전교 수위를 따지는 학생들은 스포츠로 치면 프로선수라 할 만하다.

또한 수학이나 과학 올림피아드 등 국제적인 경연대회에 나가는 학생들도 국가대표다.
이런 '공부 국가대표들'이 같은 또래의 청소년축구 대표선수들과 공을 한번 차본다고 상상해보라. 아마 축구선수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수십 골 이상 차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축구선수들에게 수학의 미적분 문제를 냈을 때 척척 풀어내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그렇다고 해서 공부 안하는 운동선수가 문제가 없다는 말은 정말 아니다.

인권위원회가 내놓은 최저학업기준 인증제야말로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기 위해 좋은 방안이다. 운동 쪽으로 방향은 잡은 학생들은 운동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도 최저학업기준에 맞게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함으로써 기본 학습능력을 갖춘 프로선수, 국가대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공부 안하는 운동선수보다는 운동 안하는 공부벌레가 더 문제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초, 중, 고교생들은 운동을 너무 안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방과 후에도 학원을 전전하며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린다.

이러다보니 외국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공부나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생이나 학자들이 외국인과의 경쟁에서 부닥치는 가장 큰 문제가 체력이라는 소리를 적지 않게 듣게 된다. 연구과제 등이 주어졌을 때 미국이나 유럽인들은 2~3일 씩 잠을 안자고도 끄덕 없이 해치우는 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만 밤을 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것. 그 원인을 따져보면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어릴 때부터 한 가지 이상 씩 운동 특기를 갖게 하고 꾸준한 체육 활동으로 평생 가는 강한 체력을 갖게 한 덕분이라고 한다.

15일은 체육의 날.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권순일 | 동아일보 스포츠사업팀장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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