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LG 정성훈 “욕심버리고 팀배팅… 야구가 즐거워”

  • 입력 2009년 5월 12일 08시 07분


해태 입단 후 현대 트레이드 시련… LG 새둥지 분위기·성적 UP “이것이 야구다”

정성훈(29)은 LG에 와서 가장 달라진 점을 묻자 “팀 배팅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친형처럼 따르는 염경엽 LG 운영팀장도 “예전보다 훨씬 팀플레이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진 것 같다”고 했다.

한국 나이 서른, 그리고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스스로가 선택한 새 팀. 그 2가지 밑바탕이 정성훈에게 새로운 책임감을 안겼기 때문이다.

올 시즌 부쩍 달라진 LG의 ‘배후세력’으로 꼽히는 정성훈. “요즘 야구가 참 즐겁다”는 그를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광주 토박이 정성훈 “야구가 재미 있었다”

정성훈은 “늘 야구를 즐기면서 해왔다”고 돌이켰다. 시작은 초등학교 2학년. 4남매 중 막내인 그는 작은 형을 따라 야구를 하러 갔다가 평생의 길을 찾았다.

선동열 삼성 감독의 모교인 송정초등학교와 KIA 이종범의 모교인 서림초등학교를 거쳤고, 무등중과 광주일고를 졸업한 광주 토박이.

특히 1루수 최희섭(KIA), 2루수 송원국(전 두산), 3루수 이현곤(KIA)과 함께 내야를 지켰던 광주일고 시절은 아마 시절의 전성기.

“그 때 전 유격수였는데, 우리 학교가 정말 최강이었어요. 붙었다 하면 이기니까 정말 신나게 야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첫 출발도 1999년 입단한 고향팀 해태였다.

물론 그 때부터 유망주로 대접받았다. 그를 눈여겨봤던 당시 김응용 해태 감독(현 삼성 사장)은 4월 한달간 벤치에만 앉혀놓으면서도 1군에 데리고 다녔고, 5월부터 바로 경기에 내보냈다.

“가만히 앉아서 선배들 경기하는 걸 보고만 있었는데도 큰 도움이 됐어요.” 덕분에 이후로도 꾸준히 성적은 냈다.

하지만 2002년 시즌을 마치고 박재홍(SK)과 트레이드돼 현대로 향했다.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 17타수 무안타에 그친 게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현대에서 맞이한 ‘황금기’

트레이드가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정성훈에게도 그랬다. 말하자면 ‘황금기’가 찾아온 셈.

태생이 “잔소리를 싫어하고 억압을 못 견디는” 그에게는 군기가 엄격했던 KIA보다 자유분방한 현대가 훨씬 편한 옷이었다.

지금은 LG에 있는 김재박 감독, 정진호 수석코치, 김용달 타격코치가 모두 그 때 코칭스태프. “프런트부터 선수단까지 모두를 사랑했어요. 팬이 별로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우리끼리 더 똘똘 뭉쳤을지도 몰라요.”

그랬으니 현대가 몰락하고 팀 이름이 바뀐 지난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첫 FA를 앞둔, 중요한 시즌이었는데 오히려 성적은 최악. 도중에 ‘항명 파동’에 휘말려 2군에 내려가기도 했다.

그 때를 정성훈은 이렇게 설명했다.

“중요한 해라고 생각해서 초반부터 너무 의욕이 넘쳤어요. 그게 화근이 됐죠. 페이스가 하도 들쑥날쑥해서 나중엔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하게 하자’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남들 눈에는 ‘태업’으로 비쳤나봐요.”

○김시진 감독을 떠난 아쉬움…그래도 ‘돈보다 의리!’

그렇다고 히어로즈를 떠나는 게 마음 편했던 것만은 아니다. 갑자기 생긴 변화 때문이다.

“김시진 감독님이 다시 오셨는데 내가 가도 되는 건가 싶었어요. FA 신청을 앞두고도 오래 망설였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말리더군요. ‘이제는 의리 때문에 실리를 포기할 나이는 지났다’면서요.”

어려운 사정을 아는 구단 내부 인사들조차 “어디가 됐든 너를 품어주는 곳으로 떠나라. 그래도 정 없으면 돌아와라”고 다독였다.

그래도 LG를 선택하기까지는 결국 ‘의리’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롯데와 KIA의 제의를 다 뿌리치고, 계약기간과 조건도 보지 않은 채 사인부터 한 이유가 현대 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은 염 팀장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인생에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이 최고죠. 한번 믿은 사람은 무조건 끝까지 믿어요.”

염 팀장은 정성훈에게 마음으로 다가왔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해준 ‘형’이었다. 염 팀장도 정성훈에 대해 “예전부터 지켜봐왔던 동생이라 마음이 남다르다”고 털어놨다.

○새 팀에서의 새 출발은 ‘쾌조’

이렇게 새 둥지를 튼 정성훈은 이제 LG에 대한 애정이 넘쳐난다.

스물 셋의 나이에 처음 만난 현대가 “마음껏 뛰어놀면서 야구하는 법을 알려준” 팀이라면, 서른에 새로 안착한 LG는 “신중한 태도로 주축 선수로서의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 같은” 팀이다.

“밖에서는 LG 어린 선수들이 겉멋만 들고 게으르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막상 와보니 정말 아니라서 오히려 놀랐어요. 열심히 했는데 그동안 결과가 받쳐주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벌써부터 후배들을 감쌀 줄도 안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그랬다. “특별히 남다른 각오를 불태우다 무리하기보다는 평소처럼 즐기면서 야구하자고 생각했다”고 귀띔했다.

혹시 경기에 지더라도 “다음날 이기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찡그리지 않으려고 한다”는 긍정적인 태도까지 완비됐다.

○동기생 FA 이진영과 단짝…4강 활력소

함께 FA로 입단한 이진영과는 이미 단짝이 됐다. 쾌활한 성격까지 꼭 맞는 두 사람은 팀의 활력소 노릇을 톡톡히 하는 중.

“타선에 무게감이 생기고 수비도 탄탄해졌다”는 김재박 감독의 칭찬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들과 동갑내기인 투수 봉중근은 “확실히 진영이와 성훈이가 온 후로 팀이 활기차졌다”고 귀띔했고, 고참 최동수도 “새 팀인데도 오래 있었던 팀처럼 잘 녹아들고 분위기를 주도한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개인적인 목표가 전혀 없다. 무조건 팀의 4강이 전부”라는 정성훈의 말이 진심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물론 LG의 수많은 팬들도 그를 ‘활기차게’ 하는 원동력이다.

“사실 현대 때는 지금보다 더 좋은 플레이를 많이 해도 큰 주목을 끌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뭘 해도 기대 이상의 반응이 오니까 재미있기만 하네요.”

이렇게 말하는 정성훈의 표정은 딱 ‘싱글벙글’ 그 자체였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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