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들이여, 졌지만 잘 싸웠다”…한국 WBC 준우승

  • 입력 2009년 3월 24일 15시 48분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과 일본의 결승 경기에서 9회말 2사 상황에서 이범호의 안타로 홈을 밟아 동점 득점한 이종욱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과 일본의 결승 경기에서 9회말 2사 상황에서 이범호의 안타로 홈을 밟아 동점 득점한 이종욱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
한국야구대표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하 WBC) 사상 첫 우승의 꿈이 물거품이 됐다. 입만 산 줄 알았던 이치로 스즈키가 한국야구의 우승을 저지했다. 징그러운 일본야구였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4일(한국시간)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제2회 WBC 결승전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일본에 3-5로 패했다. 아쉬운 패배를 당한 한국은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야구강국들을 제압한 것과 준우승에 오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국을 꺾은 일본은 지난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고비 때마다 쿠바를 잡아내며 일본대표팀의 우승을 이끈 마쓰자카 다이스케도 2회 연속 대회 MVP를 품에 안았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일본과 5차례 맞붙어 2승 3패를 기록했다. WBC에서의 통산 상대전적은 4승4패 동률. 경기가 열릴 때마다 접전이 펼쳐짐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야구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봉중근(한국)과 이와쿠마 히사시(일본)가 선발 대결한 이날 경기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숨막히는 접전이 펼쳐졌다. 세계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다.

먼저 분위기를 잡은 쪽은 일본. 일본은 3회초 공격에서 오가사와라가 적시타를 날려 선취점을 뽑았다. 2루수 고영민의 수비 에러가 겹친 아쉬운 실점이었다.

일본은 4회를 제외한 매이닝 주자를 내보내며 찬스를 만들었다. 봉중근의 뛰어난 위기관리능력이 없었다면 많은 실점을 내줘 경기를 내줄 뻔 했다. 특히 5회초 위기는 간담을 서늘케 했다. 한국은 나카지마에게 볼넷을 내준 뒤 아오키에게 안타를 얻어 맞아 무사 1-3루 위기에 몰렸다. 일본의 중심타선에 결정적인 득점찬스를 허용한 것.

하지만 한국에는 ‘일반 노예’에서 ‘국가의 노예’로 신분상승한 셋업맨 정현욱이 있었다. 정현욱은 4번타자 죠지마 켄지를 삼진으로 돌려 세워 1차 위기를 넘겼다. 자신감을 얻은 정현욱은 5번타자 오가사와라까지 삼진으로 솎아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때 1루로 뛰던 아오키를 박경완-박기혁 콤비가 아웃 처리, 한국은 무사 1-3루 위기를 실점으로 막아내는 기적적인 수비를 선보였다.

위기 뒤에는 찬스가 찾아 오는 법. 한국은 이어진 5회말 반격에서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앞선 타석에서 삼진으로 힘없이 물러났던 추신수는 이와쿠마의 주무기 포크볼을 통타, 넓은 다저스타디움의 좌중간을 넘기는 대형 솔로아치를 그려냈다. 1-1 동점.

그렇지만 일본은 7회초 공격에서 리드를 되찾았다. 가타오카와 이치로의 연속안타로 무사 1-2루 찬스를 만든 일본은 나카지마가 깨끗한 적시타를 때려 2-1로 앞섰다. 한국으로서는 추신수의 호수비와 정현욱의 병살타 유도로 추가실점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일본은 8회초 아키노리 이와무라의 희생플라이때 3루주자 우치카와가 홈을 밟아 추가점을 뽑았다. 3-1.

한국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한국은 수 많은 드라마를 만들었던 8회 1점을 따라 붙었다. 이범호의 2타루타로 찬스를 만든 한국은 이대호의 희생플라이때 3루주자가 득점에 성공, 2-3으로 추격했다.

한국은 9회말 마침내 기적을 일으켰다. 9회말 2사 1-2루 찬스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남자’ 이범호가 동점 적시타를 때려낸 것. 아웃카운트 1개가 남은 상황에서 이범호가 짜릿한 동점 적시타를 다르빗슈 유로부터 뽑아냈다.

하지만 일본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일본은 10회초 2사 2-3루 찬스에서 찬스에 강한 이치로가 2타점 적시타를 날려 3-3의 균형을 깨뜨렸다. 일본은 다르빗슈가 한국의 10회말 공격을 실점 없이 막아 결국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을 우승으로 이끈 선수는 1번타자 이치로. 한국투수들만 만나면 침묵했던 이치로는 10회 결승 2타점 적시타를 포함, 6타수 4안타 2타점으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특히 이치로는 3-3으로 맞선 10회초 결승타를 때려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다운 기량을 과시했다. 한국으로서는 다른 선수가 아닌 이치로에게 결승타를 더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 한국과의 아시아라운드 순위결정전에서 역투했던 이와쿠마는 이날 경기에서도 7.2이닝 동안 4안타 2실점 6K로 한국타선을 잠재웠다. 이와쿠마의 정교한 제구와 고속포크볼앞에 한국타자들은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이와쿠마는 쿠바전에 이어 결승에서도 쾌투, 일본대표팀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한국은 마지막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지만, 이치로를 막지 못해 결승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한국은 안타수에서도 15개를 기록한 일본에 10개가 모자란 5개를 때려내는데 그쳤다.

준우승으로 이번 대회를 마감했지만 대표팀은 한국야구의 힘과 저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한국은 박찬호, 이승엽, 박진만 등 주축 선수들이 전력에도 이탈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선수들이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여 세계정상급 리그와의 격차가 크지 않음을 확인시켰다.

한편 이날 경기가 벌어진 다저스타디움에는 54,846명의 많은 관중이 입장해 WBC 대회를 ‘아시아시리즈’로 만들었다. 같은 시간 서울 잠실야구장과 도심 곳곳에서도 거리응원이 열려 선수들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임동훈 기자 arod7@donga.com


▲동아닷컴 이철, 임광희 기자


▲동아닷컴 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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