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4구는 작전을 내리는 벤치에게나, 던지는 투수에게나 ‘굴욕’.
병살을 유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가 4번타자일 때는 더 그런 느낌이 든다.
때리고 싶었지만 승부를 피해 도망간 상대를 원망하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김태균을 보면서 3년 전 1회 WBC에서 이승엽이 얻어낸 고의4구가 떠올랐다.
2006년 3월 14일(한국시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야구 종가’ 미국과의 8강 2차전. 미국 벅 마르티네스 감독은 1-3으로 뒤지던 4회 2사 후 김민재가 좌중간 2루타를 때리자 다음 타자 이승엽과의 정면승부 대신 고의4구를 택했다.
이승엽이 1회 돈트렐 윌리스를 상대로 1점아치를 그리는 등 4연속게임 홈런포를 때려내고 있어 겁이 났던 것.
일본전 김태균이나 미국전 이승엽의 고의4구는 그만큼 ‘대한민국 4번타자’의 힘을 보여준 셈.
하나 더 주목할 대목은 고의4구를 썼던 하라 감독이나 마르티네스 감독, 둘 모두 ‘굴욕’을 감수하면서 피해갔지만 실점까지 피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김태균을 피해간 일본은 8회말 결국 이범호에게 밀어내기 볼넷으로 1점을 내줬고, 마르티네스 감독은 이승엽 이후 나온 최희섭에게 ‘대타 3점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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