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WBC 스펙트럼] 태극전사 부상투혼 10점 만점에 100점

  • 입력 2009년 3월 17일 07시 46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에 앞서 사실 걱정이 되더군요.

김인식 감독은 물론 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시차적응 문제에다가 감기몸살까지 겹쳐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으니까요.

애리조나에서 13일(한국시간) LA 다저스와 평가전을 하기 전 김현수는 거의 ‘병든 닭’처럼 눈빛을 잃고 덕아웃에서 햇볕을 쪼이고 있었고, 몸 좋다는 김태균도 비실거렸습니다.

심하게 감기몸살에 걸린 이대호는 16일 멕시코전을 앞두고 “아직도 몸이 많이 돌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전쟁터에 나가니 이제부터는 정신력이다”고 스스로에게 기운을 불어넣더군요.

한편으로는 듬직하면서도 가슴 한편에서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라운드에서도 가장 중요하다는 첫판. 멕시코전은 사실 부담이 컸습니다.

이날 선발투수 올리버 페레스를 비롯해 멕시코 선발 라인업에 든 10명 중 8명이 빅리거였습니다.

6번 지명타자 호르헤 바스케스와 8번 우익수 크리스티안 프레시치만 멕시칸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일 뿐이었습니다.

제리 헤어스턴, 아드리안 곤살레스, 호르헤 칸투, 로드 바라하스, …. 이름만 들어도 탄성이 터지는 메이저리그 스타플레이어들.

그뿐입니까. 감독까지 빅리그 16년간 320홈런을 날린 슈퍼스타 출신 비니 카스티야였으니.

투수까지 포함해 엔트리 28명 중 20명이 넘는 선수들이 전·현직 메이저리거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펫코파크는 우리 선수들에게는 낯선 곳입니다. 웅장한 구장 분위기도, 밟기조차 민망한 그라운드도, 시끄러운 멕시코 관중들의 함성도, ….

그러나 태극전사들은 그곳에 익숙한 빅리거들을 8-2로 무찔렀습니다. 멕시코를 납작코로 만들었습니다.

이범호 김태균 고영민이 홈런 퍼레이드를 펼칠 때, 고영민 이진영이 더블스틸을 성공할 때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아팠던 태극전사들 맞나요? 눈물 날 만큼 감격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허름한 우리네 구장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선수도 이런 멋진 구장에서 뛰면 메이저리거 못지않게 폼나는데.

우리 선수의 기량이 메이저리거보다 한참 뒤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포장의 차이가 아닐까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갑자기 화가 치밀었습니다.

펫코파크는 3년 전 WBC 때 4강 돌풍을 일으키던 한국이 일본에 패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장소입니다.

아직 이곳에서 적게는 2경기, 많게는 3경기를 치러야합니다. 이젠 펫코파크가 ‘약속의 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샌디에이고(미 캘리포니아주)|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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