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베이스볼 에세이] 대한 영건, 세계를 놀래켜라

  • 입력 2009년 3월 2일 07시 47분


문득 놀랐습니다. 하와이대 무라카미 구장 한 구석에서 김태균(한화)의 얘기를 듣다가 말입니다. 이번 WBC 대표팀이 얼마나 젊어졌는지 새삼 깨달았거든요. 야수 중 최고참은 박경완(SK)인데, 그 다음 순번이 서른도 안 된 이진영(LG) 이종욱(두산) 이택근(히어로즈)이랍니다. 투수 쪽도 엔트리 13명 중 8명이 20대고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뤄진 세대교체입니다. 박찬호가 없고, 이승엽과 김동주가 빠졌습니다. 나중엔 박진만까지 도중하차했습니다. 대신 늘 머리를 맞대고 몰려다니는 20대 초반의 ‘영건’들이 즐비합니다. 새 클린업 트리오는 모였다 하면 폭소가 터지는 스물일곱 동갑내기들이고요. 수다 떠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20대 동네 청년들. 하지만 저들이 마운드와 타석에서 어떤 존재감을 보였나 생각해보면, 갑자기 시선이 달라집니다. 류현진(한화·사진)-김광현(SK)이 앞서고 윤석민(KIA)이 뒤를 받치는 마운드는 높디높고, 김태균-이대호(롯데)에 추신수(클리블랜드)와 김현수(두산)가 앞뒤로 포진한 중심타선은 무시무시합니다. 누가 뭐래도 이들은 지금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니까요.

15일 동안 하와이에 머물면서 참 많은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괴로워했던 박기혁(롯데)의 찡그린 미간, 아픈 어깨를 움켜쥐고도 애써 괜찮다던 박진만의 눈웃음, 최종 엔트리 발표 전까지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범호(한화)와 최정(SK)의 굳은 입술.

더 있습니다. 첫 태극마크를 단 정현욱(삼성)과 이재우(두산)의 감격, 7년 만에 국가대표로 돌아온 이승호(SK)의 미소, 3년 전보다 훨씬 어깨가 무거워진 봉중근(LG)의 눈빛.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큼은 모두 같습니다. 김태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분위기가 좋기도 힘든 것 같아요. 우리가 한 번 일을 내보자는 의지가 정말 강해요.”

마지막 연습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은 약속이나 한 듯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수고’라는 단어 하나에는 다 담기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1일(한국시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앞서 일본으로 떠나는 대표팀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젊음만큼 큰 무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의 패기가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 말입니다.

하와이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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