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 사격 금메달 이윤리, 사랑의 힘!…첫 금 총성 울렸다

  • 입력 2008년 9월 10일 08시 57분


‘571점(600점만점), 578점, 581점, … , 585점.’

장애인올림픽을 한 달여 앞둔 8월. 나날이 기록이 향상됐다. 여자50m소총3자세의 본선세계기록은 574점. 장재관 코치는 “이러다가 590점도 쏘겠다”며 이윤리(34)를 독려했다.

욕심이 화근이었다. 585점을 쏜 다음날(8월20일), 훈련도중 왼손목이 욱신거렸다. 6kg이 넘는 화약총은 일반인이 지탱하기도 쉽지 않다. 척수를 다쳐 허리를 쓸 수 없는 이윤리는 팔로만 총을 이겨내야 했다. 쉼 없이 하중이 가해지자 손목이 고장 났다. 병원에서는 “손목 인대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코 앞, 훈련을 중단할 수 없었다. 베이징에 온 뒤로는 휠체어를 스스로 밀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이시홍 감독과 장재관 코치가 휠체어를 끌어줬다.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눈치도 보였지만 ‘메달을 위해’ 이를 악물었다.

7일, 여자10m공기소총 본선. 39번째 발에서 장전이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空)격발. 한 발이 0점 처리되면서 결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러다 모든 것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주종목인 50m소총3자세를 하루 앞둔 밤. 이윤리는 “1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9일 베이징국가사격장 여자50m소총3자세 본선. 이윤리는 30발 째를 넘기면서 다시 왼손목이 아팠다. 위기의 순간, 떠오른 것은 특전사 저격수 출신의 남자친구가 가르쳐준 이미지트레이닝. “이것은 손목이 아니라 총을 지지 하는 나무토막이다.” 이윤리는 마음으로 몸을 다스렸다. 결국 결선합계 676.9점(579+97.9)의 장애인세계기록 겸 패럴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윤리는 1996년, 빗길에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겪었다. 보름 간 넘나든 생(生)과 사(死). 정신을 차려보니 하반신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자신보다 더 절망하는 부모님을 위해 일부러 웃음을 보일 정도로 속이 깊었다.

이윤리는 사고 전 합기도 1단에 테니스광. 장애가 생긴 뒤에도 탁구를 즐겼다. 2006년 1월 만난 남자친구 이춘희씨는 이윤리에게 사격을 가르쳤다. 이윤리는 “남자친구가 캠코더로 경기화면을 녹화해 자세를 분석해 줄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고 했다. 이춘희씨는 “올림픽 때문에 결혼도 미뤘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정식으로 청혼을 할 생각”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남자10m공기소총에 출전한 이지석(34)도 705.3점(600+105.3점)으로 프랑스의 라파엘 볼츠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임연(41.KB국민은행)은 여자 50m 소총3자세에서 이윤리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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