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여자복싱 최연소 19세 세계챔프 김주희

  • 입력 2005년 6월 2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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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도 실컷 먹고 싶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싶고….” 김주희는 속이 깊고 따뜻하다. 그는 지난달 31일 모교인 영등포여고에서 스포츠용품업체 스프리스와 후원계약을 마친 뒤 250만 원을 모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당초 호텔에서 조인식을 가지려 했으나 김주희가 그 비용을 아껴 후배들에게 주고 싶다고 제안해 이뤄졌다. 김미옥 기자
“떡볶이도 실컷 먹고 싶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싶고….” 김주희는 속이 깊고 따뜻하다. 그는 지난달 31일 모교인 영등포여고에서 스포츠용품업체 스프리스와 후원계약을 마친 뒤 250만 원을 모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당초 호텔에서 조인식을 가지려 했으나 김주희가 그 비용을 아껴 후배들에게 주고 싶다고 제안해 이뤄졌다. 김미옥 기자
어느 날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다.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쓰러졌다. 엄마는 집을 나갔다. 어린 자매(10, 14세)는 하루아침에 소녀 가장이 됐다. 하지만 그들 가정엔 늘 웃음꽃이 피었다. 동생은 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서로 밥 하고 빨래도 하며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살갑게 보살폈다.

○ 지하 월세방에 병든 아버지 모시고

여자프로복싱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주니어플라이급 최연소 세계챔피언 김주희(19·거인체육관).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거인체육관(관장 정문호)에서 그를 만났다. 160cm, 50kg의 레게머리 소녀. 표정이 환했다. 어떤 것을 물어도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는 지금도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지하 월세방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그동안 뒷바라지해 줬던 언니는 지난해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나보다 못사는 분이 얼마나 많은데요. 가난이 창피하거나 숨길 것은 아니잖아요?”

반창고로 고운 주먹에 밴디지를 하고 있는 김주희.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복싱에 발을 들였다. 첫눈에 반했다. 샌드백 두드리는 게 마냥 좋았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19일 한국계 미국인 복서 멜리사 셰이퍼(26)를 꺾고 챔피언이 됐다. 대전료는 2500만 원. 이 중 세금 건강보험료 등 700만 원을 제하고 1800만 원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이 돈도 거의 반은 몸 고치는 데 썼다. 병원에선 그의 병력 차트를 ‘일지’라고 부른다. 거의 두툼한 책 한 권의 분량. 경기가 끝난 후엔 손목, 허리, 눈썹 주변, 발목 등 안 아픈 데가 없다. 5월 6일 필리핀의 마이다 키트슈란을 상대로 1차 방어에 성공하고는 이제야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11전 8승(3KO) 2무 1패.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꼭 세계 챔피언이 되고 싶었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진학도 미뤘어요.”

그는 연습 벌레다. 보통 남자선수들은 시합 전에 150라운드(1라운드 3분) 정도 연습 스파링을 가진다. 그러나 그는 300라운드를 넘게 한다. 남자선수 5명과 1라운드씩 연속 스파링도 가진다. 이럴 땐 보통 앞의 4명 남자선수는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된다. 그를 지도하고 있는 정문호(48) 관장은 “꼭 미친× 같다”며 혀를 내두른다.

○ 스파링 때 “미친X 같다” 들으면 기뻐

“관장님이 ‘미친× 같다’고 할 때 기분이 가장 좋아요. 전 운동할 땐 미친 듯이 무아지경에서 하거든요. ‘미쳐야 미친다’고 하잖아요?”

그는 9월경 IFBA 플라이급 챔피언인 라이벌 최신희와 세계타이틀 통합전에 나선다. 오전 5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지옥훈련에 들어간다. 틈틈이 빨래하고 밥하는 것도 당연히 그의 일. 힘들 땐 교회에 나가 기도한다. 쉴 땐 박강성의 노래 ‘장난감 병정’을 듣는다. 좋아하는 이종격투기 선수 최홍만의 펀치가 어설퍼 안타깝다. 기회가 있으면 ‘개인교습’을 해 줄 텐데….

김주희는 밝다. 당당하다. 그의 주먹은 결코 울지 않는다. 늘 주먹이 까르르 웃는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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