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손기정의 애국심 잊지못해”…‘살아있는 전설’ 존 켈리 인터뷰

  • 입력 2004년 4월 19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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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고 손기정 선생을 처음 만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70년 가까이 ‘마라톤 우정’을 나눈 존 켈리(왼쪽). 옛 일을 즐겁게 회상한 그는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역시 좋은 친구로 지낼 거야“ 라고 말했다. 보스턴=양종구기자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고 손기정 선생을 처음 만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70년 가까이 ‘마라톤 우정’을 나눈 존 켈리(왼쪽). 옛 일을 즐겁게 회상한 그는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역시 좋은 친구로 지낼 거야“ 라고 말했다. 보스턴=양종구기자
《“손기정은 내 가장 좋은 친구였지. 다정다감했고 의리가 있었어. 우린 베를린에서 늘 웃으며 만났고 베를린 시내를 함께 뛰면서 컨디션을 조절했었지. 난 손기정에게 ‘아주 강인하게 생겼다’ 했었지. 결국 그는 우승했어.”

‘보스턴의 영웅’ 존 A 켈리(96)는 68년 전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회상하며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켈리 옹은 고 손기정 선생이 금메달을 획득한 베를린올림픽에서 미국대표로 출전해 18위를 했던 선수. 레이스가 끝난 뒤 손 선생에게 “운동화를 내게 주게나. 그러면 나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네”라며 손 선생이 신고 뛰었던 신발을 얻어 갔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1935년과 1945년 보스턴마라톤에서 두 번 우승했고 1992년까지 61회 출전(58번 완주)해 2위 7번, ‘톱10’에 18번이나 든 보스턴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마의 2시간30분 벽을 깬 고 손기정 선생이 우승 후 트랙을 빠져나오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마라톤 신발은 존 켈리에게 주어졌고 서로의 우정을 잇는 징표가 됐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제108회 보스턴마라톤 개막 하루 전인 19일 보스턴시 페어몬트 코플리 플라자호텔에서 켈리 옹을 만났다. 지나가는 시민들마다 “안녕하세요. 우리의 영웅 켈리씨”라며 아는 체를 했고 그는 이에 일일이 손을 들어 답례했다.

“손기정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Me Korean, not Japanese)’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지.”

그는 손 선생의 뜨거운 애국심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운동화를 달라고 했던 것은 신발이 엄지발가락과 다른 발가락이 구분돼 있었고 아주 가벼웠기 때문이야. 손기정이 나중에 다시 두 켤레를 보내줘 잘 신었어. 손기정이 신었던 신발도 다 떨어질 때까지 신고 버렸어.”

보스턴마라톤 조직위(BAA) 글로리아 G. 래티 부회장은 “베를린올림픽때만 해도 미국산 운동화는 무거웠기 때문에 미국선수들은 다른 나라 선수들이 가벼운 신발을 신고 있으면 달라고 했다. 아마 켈리씨도 그랬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베를린에서 귀국한 뒤 손기정에게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하라고 4번이나 편지를 썼어. 손기정은 나중에 훌륭한 선수들 데리고 와서 또 우승을 시켰으니 지도자로도 성공한 셈이지.”

손 선생은 켈리 옹의 권유로 47년(51회) 서윤복을 보스턴마라톤에 출전시켜 세계기록 우승(2시간25분39초)을 일궈냈다. 또 50년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을 1, 2, 3위에 입상시켜 한국마라톤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2년 전 손기정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슬펐지. 하지만 그게 인생이야. 우리가 다시 태어나 또 만난다면 역시 좋은 친구로 지낼 거야. 그러나 다시 레이스를 할 땐 나도 만만치 않을 걸.”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켈리 옹의 목소리는 정정했다. 그는 84세 때 마지막으로 보스턴마라톤을 뛰었고 이후엔 대회 때마다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보스턴=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심장파열’이 아니라 ‘상심’의 언덕…켈리와 ‘하트 브레이크 힐’

보스턴마라톤에서 가장 잘 알려진 ‘상심의 언덕(Heartbreak Hill)은 ’보스턴마라톤 영웅‘ 존 A 켈리 때문에 생겼다.

1936년 대회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켈리가 1위로 달리다 32km지점인 이 언덕에서 엘리슨 M 브라운에게 따라 잡힌 뒤 낙심천만의 표정을 지은 게 발단. 결국 브라운이 우승했고 켈리는 5위에 그쳤다.

이에 당시 보스턴글로브지의 기자 네이슨은 ‘켈리를 상심시키다(Breaking Kelley's heart)’란 기사를 썼고 그 때부터 그 언덕은 ‘상심의 언덕’으로 불리게 됐다. 한국의 일부 마라톤 마니아들은 이 언덕을 너무 힘들어 심장이 터질 것같다는 뜻의 ‘심장파열 언덕’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

켈리의 동상이 서있는 이곳은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동상은 27세 때인 1935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처음 우승할 때와 1992년 61번째 레이스할 때의 모습을 본땄다. 동상 이름은 켈리의 애창곡이기도 한 ‘마음은 청춘(Young at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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