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2월27일 28일째 "남극 날씨 진짜 끝내준다"

  • 입력 2003년 12월 29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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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게 느껴지는 날씨에 자켓은 벗었지만 마스크엔 운행 중 내쉬는 입김이 얼어붙어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사진은 이치상 대원
덥게 느껴지는 날씨에 자켓은 벗었지만 마스크엔 운행 중 내쉬는 입김이 얼어붙어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사진은 이치상 대원
날씨 : 맑음

기온 : 영하 16℃

풍속 : 초속 2m 미만(거의 무풍)

운행시간 : 08:15-19:30 (11시간15분)

운행거리 : 29.8km (누계 :608.2km) /남극까지 남은 거리:522.5km

야영위치 : 남위 85도 19분 292초 / 서경 81도 22분 026초

고도 : 1,380m / 86도까지 남은 거리: 76.4km

▼총 운행거리 600km를 넘다!▼

허큘레스를 출발한지 28일째 드디어 운행거리 누계가 600km를 넘었다. 허큘레스로부터 도상 직선거리 601km에, 운행거리는 608.2km를 기록한 날이다. 나침반을 이용한 방향유지가 정확하게 된 셈이다. 남극점까지 남은 거리가 522.5km이니 오긴 많이 왔다. 아침 8시 15분 야영지 출발, 영하 16도에 어제처럼 바람이 없는 날. 출발 때만 조금 춥게 느껴졌을 뿐 몸 주위를 맴도는 해와 몸의 열기가 오전 운행을 마치기도 전에 대원들의 방풍 자켓을 벗도록 만든다. 얼굴보호 마스크에 얼어붙은 고드름과 성애는 분명 기온이 낮음을 보여 주는데 격렬한 몸동작으로 썰매를 끄는 대원들에겐 방풍과 보온을 위한 고어텍스 자켓이 여간 거추장스럽지 않다. 누가 뭐라 안해도 썰매를 멈추고 서슴없이 벗는다. 어제도 벗었는데 오늘까지. 이런 날이라면 탐험대에게는 여유 있는 운행을 할 수 있어 좋을 뿐만 아니라 운행종료 후 캠프에 도착해서도 캠프준비에 여유가 생긴다. 온몸이 땀에 젖어 축축하고 냄새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아무튼 날씨가 좋으면 남극에서는 만사형통이다.

오전 10시 휴식, 박대장이 썰매위에 드러눕는다. 흐느적거리듯 몸에 기운이 없어 보인다. 다른 날 같으면 대원들이 쫓아가기 힘들게 멀리 달아났을 텐데 오늘은 다르다. 남극점 원정을 위해 칠레로 들어오는 날부터 계속되는 설사가 벌써 한달이 넘었다. 먹는 대로 설사를 하니 기운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탈수증세까지 겹쳐 '죽을 지경'이란다.

휴식 후 출발과 함께 다시 썰매를 멈추고 이현조 대원에게 나침반을 넘겨주고 방향을 일러준다. 결국 대원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 운행을 대원들에게 맡기고 천천히 뒤따르기로 한다. 설원의 상태는 어제와 거의 같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에 대원들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고어텍스 자켓을 벗었지만 그래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동토의 대륙 남극에서 덥다니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오늘부터 방향을 우측의 서경 81도로 우회한다. 남위 85도 25분에서 40분, 서경 77도에서 81도 사이에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균열이 심하고 크레바스까지 섞인 빙원지대가 타원형으로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내일이면 그 장애물을 우회하여 지나치게 되고 다시 서경 80도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게 된다. 지도상에 그 위쪽으로는 별다른 장애물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남극점까지 최대한 직선으로 나가면 된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보다 26분 정도 우측으로 진행했다. 앞장선 이현조 대원은 고삐 풀린 말 같다. 뒤쫓기가 힘들다. 스키도 신지 않고 푹푹 빠지는 설원을 성큼성큼 나가는 모습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우측의 Thiel mountains가 탐험대의 뒤로 밀려난다. 진행속도가 좋다.

오늘의 야영지는 이현조 대원이 잡는다. 뒤따라 온 대원들이 박대장을 기다리는 동안 텐트를 치고 매트리스를 깔고 버너를 피울 때쯤 박대장이 핼쓱한 얼굴로 도착한다. 힘들다는 말이나 표정 없이 텐트 안으로 들어가 평상시처럼 장갑과 양말을 줄에 걸어 널고 휴식을 취한다. 그래도 힘들었던지 저녁식사 후에는 조용히 잠에 빠져든다. 대원들의 관심사는 고국에서 보내온 격려의 글에 쏠려 있다. 제주도에서의 끊임없는 소식들로 오희준 대원의 입이 귀에 걸렸다. 오대원은 이현조 대원이 읽어 준 게시판을 연신 들여다보며 싱글벙글 이다.

좋은 날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날도 오는 법. 계속 좋은 날만 계속될 리 없다. 블리자드가 올 때도 됐고 화이트 아웃도 언제고 다시 올 수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했다. 몇 번의 혹독한 경험을 잊지 않고 대비한다면 어떤 경우라도 탐험대의 발목이 잡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차 한잔을 준비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대원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외친다.

"날씨 진짜 끝내준다, 내일도 오늘만 같아라"

남극점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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