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2월21일 22일째 오늘 34.9km를 걷다

  • 입력 2003년 12월 23일 14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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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시간의 막내 이현조 대원.
휴식시간의 막내 이현조 대원.
날씨 : 맑음

기온 : 영하 11도

풍속 : 초속 6m/새벽 두시부터 바람 약해짐

운행시간 :06:50 - 16:10(11시간20분)

운행거리 :34.9km (누계 :423.5km) /남극까지 남은 거리: 711km

야영위치 : 남위 83도 38분057초 / 서경 80도 03분 041초

고도 : 1,231m / 84도까지 남은 거리: 40.7km

▼하루 운행거리 30km를 넘다▼

새벽 2시경 지독하게 불어대던 바람이 잦아든다. 아무튼 다행이다. 푹 쉰 덕에 대원들의 움직임이 가벼워 보인다. 출발 준비도 순조롭다. 썰매를 다 꾸리자 박대장은 어김없이 "자 ,가자!"라고 외친 뒤 앞서 나간다. 초속 6m의 바람이 가벼운 저항을 해 온다. 그러나 운행할 땐 무풍(無風)보다 이런 가벼운 바람이 부는 게 낫다. 세 겹, 네 겹 껴입은 몸에서 나는 열기를 식혀주기 때문이다. 그런 바람과 희롱을 하듯 갈수록 걸음이 빨라지는 박대장의 뒤를 대원들은 바짝 따라 붙으며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찬 바람을 즐긴다.

입술이 부르튼 지 사나흘이 지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입술연고제를 가져오는 건데….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 박대장과 이치상대원은 강철원 대원이 병원에서 받아 온 치질치료 연고제를 입술에 바른다. 박대장은 처음에 "똥꼬에 바르는 약을 입술에 발라도 되는 거냐"며 좀 꺼려했지만 이치상 대원의 상태가 좋아 보이자 주저 없이 '똥꼬 연고제'를 입술에 바른다. 썩 내키지 않는 표정. 그래도 야전에서 그것밖에 없는지라 틈나는 대로 연고를 바른다. 바를 때마다 대원들에게 좀 좋아졌냐고 물으며 '똥 씹은 표정'이다. 그러면서 오늘은 꼭 이 얘기를 쓰라고 이치상 대원에게 당부한다. "똥꼬 연고제를 입술에 바른 사나이 이야기를…"

오희준대원이 의약품 함을 끌어 당겨 뭔가를 찾더니 발목을 걷어 올리고 한방파스를 붙인다. 어디가 어떻다고 얘기를 하지 않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일. 부은 발목을 보니 꽤나 아프긴 아픈 모양이다. 원래 그런 성격이다. 힘들 것 같아서 물어봐도 '괜찮다'는 짤막한 대답이 전부인 오희준 대원. 탐험대의 살림꾼답다. 이현조 대원은 오른쪽 정강이의 피로골절로 고생이다. 원래 피로골절은 한동안 쉬어야 낫는 법인데 아직도 한달이나 고된 걸음을 계속해야 하니 아프다고 해야 득이 될게 없다며 얘기를 피한다. 선배 대원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말하자 그의 대답이 더 걸작이다.

"게시판에 자주 글을 올려주는 조카들에게 안부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나를 박대장에게 소개해 준 산악부 선배가 첫딸을 얻었다는데 정말 축하의 뜻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는 다시 입을 꾹 다문다.

하루 운행거리가 11월 30일 허큘리스를 출발 한 이후로 최고를 기록했다. 34.9km. 이틀 동안 화이트 아웃과 블리자드에 발이 묶였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것은 아니다. 박대장은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탐험 시작 20여일이 지나면서 썰매의 무게도 많이 가벼워졌고 무엇보다 남극의 추위와 설원 걷기에 대원들이 적응이 된 까닭이다. 무리하면 그 후의 운행은 불을 보듯 뻔 한 결과로 나타난다. 박대장은 처음부터 그랬다. 무리하지 않겠다고. 다만 주어진 환경과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보면 남극점은 더 이상 잡히지 않는 먼 곳에 있는 이상향이 아니다. 현실로 다가 올 뿐이다.

남극점 탐험대는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물을 끓이면서 갖는 휴식시간. 모처럼 활기찬 대화가 오고간다. 아늑하고 화기애애하다.

박대장만이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잠에 빠져 있다.

남극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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