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승호 몫까지…” 혼신의 질주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8시 08분


동원 드림스의 윤태웅(오른쪽)이 28일만에 처음 빙판에 올라 온 몸을 날리는 투혼으로 연세대 김홍일(왼쪽 두번째)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춘천〓이훈구기자
동원 드림스의 윤태웅(오른쪽)이 28일만에 처음 빙판에 올라 온 몸을 날리는 투혼으로 연세대 김홍일(왼쪽 두번째)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춘천〓이훈구기자

2002강원도컵 코리아 아이스하키 2차리그가 열린 17일 춘천의암빙상장.

경기 전 동원 드림스의 윤태웅(26)은 “떨린다”고 했다. 그는 “한동안 잊어버렸는데 링크장 안에 걸린 승호의 유니폼을 보니 다시 한달 전 ‘그 일’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윤태웅이 말하는 ‘그 일’은 지난달 19일 춘천의암빙상장에서 열린 광운대와의 경기에서 자신이 쏜 슛에 광운대 최승호(21)가 가슴 부위를 맞고 절명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사고로 실의에 빠져 있던 윤태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최승호의 아버지 최기식씨(57)의 격려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17일 열린 연세대전은 윤태웅이 사고 뒤 28일 만에 처음 나선 공식 경기. 사고 장소에서 다시 경기를 치르는 그가 긴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경기 전 양팀 선수들의 추모묵념 뒤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윤태웅은 경기 시작 10초만에 하프라인 부근에서 첫 슛을 날렸다. 공교롭게도 28일 전 사고를 일으킨 바로 그 ‘스윕슛(바닥을 쓸 듯이 스틱으로 밀어치는 슛)’이었다. 상대 공격수를 위축시키는 과감한 보디체크를 하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 서울에선 숨진 최군의 아버지 최씨가 딸 영진씨(25) 집에서 이 경기를 TV로 지켜보고 있었다. 윤태웅을 양아들로 삼기로 한 최씨는 “주위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할 테고 승호 얼굴도 떠오를 것 같아 당분간 경기장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경기는 2-2로 비긴 채 끝났다. 동원은 7승1무2패로 공동 선두. 97㎏이었던 몸무게가 한달 동안 13㎏이나 빠졌다는 윤태웅은 땀에 젖은 얼굴로 “체력적으론 문제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하는 경기라 잘 안되네요”라고 경기 소감을 밝혔다. 그는 라커룸으로 돌아간 뒤 양아버지 최씨에게 전화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들었다.

이어 열린 경기에서 고려대는 광운대에 9-2로 대승을 거두고 6승1무3패로 4위에 올라섰다. 최승호 사고 후 제대로 팀훈련을 하지 못한 광운대는 “승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지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져 1승9패로 최하위에 처졌다.

춘천〓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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