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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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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대선 직전 치러졌던 한국의 월드컵 예선 2차전은 선거와 축구가 전혀 무관할 수만은 없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
당시 김대중(金大中) 후보가 본선진출의 사활이 걸린 한일 1차전 참관을 위해 일본 도쿄(東京)로 가려하자 참모진은 “우리 팀이 지면 ‘DJ 때문에 재수 없어 졌다’는 공세에 시달릴 것”이라며 극력 만류했다. 그러나 DJ는 참관을 강행했고 선거참모들은 우리 팀이 2 대 1로 이기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한일 2차전에는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잠실경기장을 찾았다. 경기장에 진을 친 ‘붉은 악마’들 한복판에 자리를 잡은 이 후보는 한국팀 유니폼까지 입고 젊은이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특히 내년에는 대선 예선전인 지방선거가 월드컵 대회기간 중인 6월 13일로 잡혀 있어 정치권은 이래저래 ‘월드컵 태풍’이 내년 양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해보는 분위기다.
민주당측이 은근히 ‘여당 프리미엄’을 기대하는 것이나, 한나라당측이 내년 지방선거를 ‘월드컵 직전’으로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패땐 ‘좌절감 역풍 불수도’▼
백상창(白尙昌·정치심리학) 사회병리연구소장은 “서양은 근대 이후 300여년에 걸쳐 합리적 판단과 감정을 분리시키는 훈련을 받았지만 우리는 극단적 공포감이나 애국적 정열, 집단적 좌절 등이 선거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며 “경기 결과가 어떻든 여당쪽에서 이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많다. 결과가 나쁠 경우, 즉 한국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해 ‘집단적 좌절감’이 폭발할 경우 정반대의 ‘역풍’이 몰아칠 수도 있다는 것.
월드컵을 겨냥한 여야 후보들의 야심 찬 행보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여야는 각각 당 차원에서 ‘월드컵 지원단’ ‘월드컵 지원특위’ 등을 구성했고 대선예비주자 개인별로도 월드컵과 연계할 수 있는 각종 이벤트를 검토하고 있다.
한편 월드컵으로 주가 급등이 예상되고 있는 정몽준(鄭夢準) 월드컵조직위원장의 대선 출마여부도 관심거리다. 정 의원은 최근 “현 시점에서는 월드컵 대회에만 집중하고 그 후의 일은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나서 생각하고 싶다”며 강한 여운을 남겼다.
<윤영찬·윤종구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