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속보] 테니스 졌지만 당당한 이형택

  • 입력 2000년 9월 19일 23시 10분


‘찻잔 속 태풍’은 결코 아니었다.

이달초 US오픈테니스대회에서 한국 남자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룬 이형택(24·삼성증권). 진한 감격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했다. 남자복식 출전권만 갖고 있었지만 대회 개막 전날인 14일 행운의 단식 와일드카드를 받았다. 생애 첫 올림픽 단식 코트를 밟는 영광을 안은 그는 기쁨만큼 부담도 컸던 게 사실. 15일 시드니로 출국한 그는 훈련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대진발표 결과 1회전 상대로 결정된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스페인)는 세계 11위의 강호. 힘 한번 못써보고 완패하면 US오픈의 신화도 우연이나 행운으로 퇴색될 우려마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19일 열린 페레로와의 남자단식 1회전에서 이형택은 비록 1―2로 역전패, 탈락했으나 전혀 밀리지 않으며 당당하게 맞섰다. 경기시간 2시간32분이 말해주듯 시종일관 접전을 펼쳤고 경기 내용에서도 듀스 23차례, 서브에이스 3―4, 위닝샷 25―26, 에러 50―45 등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100계단 가까이 차이나는 랭킹을 뛰어넘어 선전한 이형택은 US오픈에 이어 올림픽에서도 자신감과 함께 세계무대에서도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테니스 전문가들은 “이제 이형택이 완전히 일정궤도에 오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하고 경험을 기른다면 세계랭킹 50위 내 진입도 시간문제라는 것.

팀 선배 윤용일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남자복식에서 재도전하는 이형택은 다음달 프로테니스협회(ATP)투어인 샐럼오픈과 재팬오픈에 잇따라 출전한다. 이 두 대회에서 이형택이 여세를 몰아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다면 고속질주에는 더욱 강력한 추진력을 얻을 전망이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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