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 안양LG 골키퍼 사리체프 귀화시험 통과

  • 입력 2000년 2월 29일 23시 24분


“죽는 날까지 한국에 살고 싶었는데 이제 뜻을 이뤘습니다.”

구소련 축구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다 한국 프로축구에 발을 디뎌 천안 일화의 수문장을 거쳐 현재 안양 LG의 골키퍼 코치를 맡고 있는 ‘신의 손’ 사리체프(40).

그가 마침내 가슴에 품고 있던 뜻을 이뤘다. 지난해말 한국 귀화 신청을 냈던 그가 지난달 24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필기와 면접으로 치른 귀화시험을 통과, 29일 합격 통보를 받은 것.

이로써 사리체프는 귀화시험을 치르고 한국인이 된 첫 외국인 스포츠 스타가 됐다. 사리체프는 이날 “기쁘기는 하지만 한국 이름도 새로 지어야 하고 아직 어눌한 한국어 공부도 더 해야 하고 너무 너무 바빠요”라고 말했다.

그는 합격통보를 받자마자 그라운드 복귀절차를 서둘렀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한국프로축구 선수등록 마감일이었고 사리체프는 안양 LG와 연봉 4만8000달러에 계약한 뒤 한국프로축구연맹에 ‘한국인 수문장’으로 선수등록을 마쳤다.

60년 6월 12일생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등록된 프로축구 최고령(40세) 선수가 된 그는 은퇴 1년5개월만인 이달 19일 막을 올리는 2000년 프로축구 조별컵대회에서 현역으로 그라운드에 복귀한다.

“외국인 골키퍼 출전금지 규정으로 98시즌이 끝난 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그간 안양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며 몸 관리를 꾸준히 해왔죠. 전성기에 못지않은 기량을 선보일 겁니다.”

92년 1월 그가 축구 용병으로 한국땅을 처음 밟았을 땐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기만 했다. 돈벌이를 위해 이국땅을 찾았지만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부인 올가(37)와 딸 올가(16), 아들 에프게니(14)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 생활이 힘들어 귀국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 맛깔스러운 불고기와 한국인의 훈훈한 인심에 반해 귀국을 미룬 것이 8년여. 언제부턴가 자신이 한국인인지 러시아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한국의 풍광과 사람이 너무도 좋았고 한국 축구가 국제 무대에서 부진할 때면 자신의 일처럼 가슴이 아팠다. ‘한국인이 되자’는 생각이 가슴 한편에 자리잡았고 결국 그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됐다.

사리체프의 꿈은 한국 국가대표 코치. 러시아 국가대표로 뛴 경력이 있어 현역 대표는 못되지만 한국 축구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현재 한국축구는 조금 부족한 점이 있지만 가능성은 충분해요. 2002월드컵축구대회에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낼 겁니다.”

사리체프는 92년 천안 일화에 입단, 은퇴할 때까지 193경기에서 218골을 허용해 경기당 평균 1.1실점의 철벽 수비를 과시하며 천안의 정규리그 3연패(93∼95년)를 이끈 후 지난해 안양 골키퍼 코치로 적을 옮겼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