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나래 주희정,아픔딛고 올시즌 신인왕 도전

  • 입력 1997년 10월 29일 20시 28분


『이제 더이상 슬픔은 없다』 프로농구 나래블루버드의 주희정(20.1m85)은 코트에 나설 때마다 이렇게 다짐한다. 부모의 얼굴도 모른채 할머니 손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부상때문에 뒷전에서만 맴돌았던 대학시절, 그리고 할머니 치료비를 대기 위해 대학을 중도포기해야 했던 아픈 기억…. 그는 지난 날을 애써 잊으려 한다. 어쩌다 가슴쓰린 옛일이 떠오를 때마다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그는 농구공을 들고 나간다. 주희정에겐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없다. 어머니는 핏덩이인 그를 두고 떠났고 아버지도 겨우 얼굴을 익힐만 할 때 집을 나갔다. 그는 할머니 손에서 컸다. 코흘리개때 입문한 농구는 외로움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선수들과 어울려 땀흘리다 보면 아버지 어머니 생각도 저만큼 달아났다. 부산 동아고교를 거쳐 고려대에 입학한 것이 94년. 1학년때 잠깐 코트에 나서봤지만 곧 발목부상이 그를 덮쳤다. 한참을 쉬다보니 자신감도 사라졌다. 때문에 후보로 가끔씩 출장하는 것이 고작. 부산에서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간경화에 고혈압. 아무도 할머니의 치료비를 댈 사람은 없었다. 대학2년생인 자신외에는…. 며칠동안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그는 나래농구단의 이재호코치를 찾았다. 그는 고려대 코치출신. 주희정의 딱한 사정을 들은 이코치는 최명룡감독과 의논, 고려대측의 동의를 얻어 그를 뽑았다. 지난해 10월 대학을 중퇴, 나래 유니폼을 입은 주희정은 다음달 8일 개막하는 97∼98프로농구가 데뷔무대. 그는 지난해 준우승팀인 나래의 주전 포인트가드. 최감독은 『경기경험이 적은 탓에 아직 감각이 떨어지지만 하루가 다르게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며 『올 시즌 중반쯤이면 일급 포인트가드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의 장기는 스피드와 넘치는 힘, 그리고 수비. 지난 19일 SBS스타스와의 시범경기에선 15분동안 뛰며 13득점에 리바운드 3개, 가로채기 1개와 속공 2개를 연결시켰다. 그는 팀의 막내. 나래의 「물통당번」이 바로 그다. 자리에 누웠다가도 할머니 생각이 나면 주희정은 느닷없이 옷을 챙겨입고 나간다. 정신없이 슛을 던지고 이어 드리블. 땀을 흘리다 보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기아엔터프라이즈의 강동희. 특히 신들린 듯한 드리블과 어시스트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거울앞에 서서 드리블 연습을 하는 것도 강동희의 흉내를 내기 위한 것. 『올해 우리팀이 우승하는 데 한몫 거들고 싶습니다. 나를 뽑아준 구단에 보답하는 길은 그것뿐이니까요』 이제, 주희정에게 슬픔은 없다. 다만 농구만이 있을 뿐이다. 〈최화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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