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고가, 침하 발견 직후 지지대 설치하고 조사했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27일 19시 58분


거더 튼튼하다며 버팀대 설치 않고 철거
“철로 지나는 자리, 설치 장소 마땅치 않아”
전문가 “철거 계획상 안전했다 하더라도
2.9㎝ 단차 발견됐으면 붕괴 대비했어야”

27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콘크리트 코어 채취를 하고 있다. 콘크리트 코어 채취는 사고 원인이나 구조물 안전성을 확인하는 핵심 조사 작업이다. 2026.5.27 뉴스1
27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콘크리트 코어 채취를 하고 있다. 콘크리트 코어 채취는 사고 원인이나 구조물 안전성을 확인하는 핵심 조사 작업이다. 2026.5.27 뉴스1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 원인과 관련해 27일 전문가들은 상판(슬래브) 절단 등의 작업으로 거더(받침보)의 균형이 무너져 갑작스럽게 붕괴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2.9cm의 침하가 발견된 시점에 지지대 같은 안전조치를 하거나 안전진단 시 추락 방지용 장구를 갖췄다면 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사고 원인 파악과 함께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 “단차 발견했을 때 임시 지지대 설치했어야”

산업안전보건법 38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나 구축물이 붕괴할 우려가 있는 장소에서 작업이 이뤄질 경우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서울시가 시공사 입찰 당시 작성한 ‘서소문고가 개축(성능개선) 실시설계 용역 공사시방서’ 자료에도 시공 관련 안전대책으로 ‘필요시에는 철거 구조물에 버팀대 또는 지주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고가차도 해체 계획을 설계하면서는 가설 지지대를 설치하는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고가 구조상 거더가 잘 받쳐져 있어 임시 지지대가 필요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이 판단했다는 이유에서다. 임춘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은 27일 “철거 계획을 최초로 수립할 당시 설명으로 보면 거더의 안전 부분은 이상이 없었다고 파악했고 거더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고는 현장에서 파악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 했다. 도시기반시설본부 관계자는 “경의선 철로가 지나가는 구간이라 지지대를 설치할 자리도 마땅치 않다”고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고 직전에도 고가차도 아래 철로를 지나는 열차가 운행됐다. 코레일 관계자는 “사고가 일어나기 약 5분 전 42명이 탑승한 행신발 KTX, 약 1분 전에는 서울역으로 돌아가는 빈 무궁화호가 지나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철거 계획상 안전했다고 하더라도 슬래브나 거더가 설치된 현재 시점의 상태에 따라 추가적인 안전조치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9cm의 침하가 발견된 상황을 이미 구조적 균형이 무너진 상태로 인지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조춘환 서울디지털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서소문 고가가 노후화된 점을 고려해 처음 해체 계획서에 지지대 설치를 반영하지 못했으면 단차가 발생한 직후라도 임시 지지대를 설치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전날 사고 당시 안전진단에서는 사상자들이 별도의 추락 방지 장치 없이 거더 하단에 설치된 비계에 올라가 침하 상태를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임 본부장은 “고가차도가 공중 비계로 가려져 있어 아래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날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진단 C등급에 해당하는 서울 시내 교량 25곳에 대해 긴급 점검에 나섰다. A~D급으로 나뉜 안전진단 등급 중에서 현재 서울 시내에 D등급 교량은 철거 중인 서소문 고가차도 외에는 없어 C등급 교량 조사에 나선 것. 또 서울시는 교량 이외에도 현재 서울시가 발주해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에 대해서도 일제히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사고로 서울역에서 신촌역 간 전차선이 단선돼 빚어진 전국 열차 운행 차질은 최소 29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사망자 부검 끝나고 빈소 차려져

이번 사고로 사망한 시공업체 현장소장과 감리단장, 토목구조기술사에 대한 부검은 이날로 마무리되고 빈소가 차려졌다. 전남 나주에 가족을 둔 채 고가차도 철거 공사를 위해 홀로 서울로 상경했다가 참변을 당한 현장소장 이모 씨(58)의 빈소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빈소가 마련된 이날은 이 씨의 생일이기도 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는 60대 감리단장 안모 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안 씨의 차남(33)은 “경제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 최근에 자주 연락을 드렸는데,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괜히 무리하게 일하다가 다친 것 같다”고 탄식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당시 외부 전문가로서 안전진단에 참여한 구조기술사 이모 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경찰은 이날 관계기관 합동으로 사고 현장에 대한 정밀 감식을 진행하고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서울시와 시공사, 감리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철거 계획과 현장 근로자에 대한 교육 여부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관계자들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할지 검토하며 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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