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월 자산가 중심 증여 급증
강남4구-마용성 2077건 전수조사
해당지역 서울 미성년 증여의 60%
국세청 “공시가격 신고, 시가로 과세”
아버지로부터 서울 강남구 소재 아파트를 물려받은 김모(가명) 씨. 증여세 신고를 하려다 보니 같은 단지 같은 평형 아파트가 60억 원에 거래된 걸 알게 됐다. 증여세가 생각보다 비싸질 것 같자 지인에게 소개받은 감정평가 법인에 시가보다 낮게 평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시가의 65% 수준인 39억 원으로 증여세를 신고했다가 결국 국세청에 덜미를 잡혔다.
올 들어 서울 아파트 값이 뛰면서 편법 증여가 기승을 부리자 과세당국이 칼을 빼 들었다.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의 증여 사례를 전수 검증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세청은 4일 올해 1∼7월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소재 아파트 증여 건수 2077건을 전수 조사한다고 밝혔다.
● 시세 60억 원인데 신고액은 39억 원
국세청이 직접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의 아파트 증여세 신고 적정 여부를 전수 검증하겠다고 밝힌 것은 최근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증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3일 부동산 등기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0월 서울의 집합건물(아파트, 주거용 오피스텔 등) 증여 건수는 7708건으로 집계됐다. 동기 기준 2022년(1만68건) 이후 최대치다. 해당 기간 미성년자에게 이뤄진 서울 아파트 증여 또한 223건으로 3년 만에 가장 많았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이어지자 미리 자녀에게 집을 넘겨 추가 가격 상승 시 부담해야 할 증여세를 줄이려는 자산가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각종 탈루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강남4구와 마용성 소재 아파트가 국세청의 첫 번째 타깃이 됐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이뤄진 서울 집합건물 증여 중 약 40%, 미성년자가 증여받은 서울 아파트의 약 60%가 해당 지역에 집중된 탓이다.
과세당국은 우선 11월 기준 증여세 신고기한이 도과한 1∼7월 강남4구·마용성 아파트 증여 건수 2077건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이 중 증여세 신고는 1699건 이뤄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시가로 신고한 1068건은 적절한 가액인지 확인할 것”이라며 “공동주택 공시가격으로 신고한 631건의 경우 시가보다 현저히 낮게 신고한 사례는 국세청이 직접 감정 평가해 시가로 과세할 예정”이라고 했다.
● 월급으로 빚 갚고 ‘엄카’로 생활
증여세 탈루 방식은 신고 금액 축소 외에도 다양하다. 어머니로부터 송파구 소재 20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수억 원의 근저당 채무 인수 조건으로 부담부 증여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생활비 지원으로 상환을 돕고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전세 낀 강남 아파트를 물려받고, 아파트 시가에서 전세 보증금을 뺀 나머지 금액에 대해 증여세를 신고한 사례에서도 탈루가 개입돼 있었다. 알고 보니 전세 세입자는 외할아버지였고, 퇴거 후에도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았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채무(전세 보증금)를 외할아버지가 대신 갚아주는 편법 증여가 이뤄진 셈이다.
‘세대 생략’ 증여 꼼수도 검증 대상이다. 고가 아파트를 미성년 자녀에게 증여하면서 증여·취득세 납부를 위한 현금 수십억 원을 함께 물려준 사례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높은 증여세율을 피하기 위해 현금은 미성년 자녀의 조부가 세대 생략 증여하는 것처럼 위장 신고해 증여세를 탈루한 혐의를 받는다.
과세당국은 추후 강남4구와 마용성 지역 외에 서울 다른 지역으로도 고가 아파트 증여 검증을 확대할 계획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강남4구·마용성의 검증 기간을 정해두진 않았다. 검증 결과 탈루 혐의가 포착되면 바로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며 “향후 고가 아파트에 대한 증여 건수가 계속 늘면 검증 대상은 언제든지 다른 지역으로도 넓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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