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안에서 피어난 따뜻한 명절’ 전주 소년원의 추석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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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년 10월 12일 10시 00분


추석 연휴에 출근해 보호소년들과 시간을 보낸 전주 소년원 교사와 직원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스럽게 행동하라”는 교훈이 배경에 걸려있다. 전주=박태근 기자 ptk@donga.com
추석 연휴에 출근해 보호소년들과 시간을 보낸 전주 소년원 교사와 직원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스럽게 행동하라”는 교훈이 배경에 걸려있다. 전주=박태근 기자 ptk@donga.com

“아이는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다.” 심리학자 앨버트 밴두라(Albert Bandura)의 ‘보보 인형 실험’(1961)이 남긴 메시지다. 전주소년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어른의 세계에서 잠시 길을 잃었지만, 여전히 배우고자 하는 눈빛이 그곳에 있었다.

일주일간의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3일, 기자가 찾은 전주소년원(송천중고등학교)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모인 곳’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다시 수줍고 맑은 눈빛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전주소년원 교사들이 추석을 맞아 보호소년들과 송편을 빚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주=박태근 기자 ptk@donga.com
전주소년원 교사들이 추석을 맞아 보호소년들과 송편을 빚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주=박태근 기자 ptk@donga.com

전주소년원은 전국에서 수용 질서가 가장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시설로 꼽힌다.

오전 10시 추석 연휴를 맞아 식당에 모여든 소년들은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교사와 직원들은 연휴 동안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 명절의 의미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직원들은 휴일에도 자발적으로 출근해 보호소년들과 함께 송편을 빚으며 따뜻한 명절 분위기를 만들었다.


“송편을 잘 빚어야 예쁜 딸 낳는다”는 교사의 농담에 소년들은 깔깔 웃었다. 여교사보다 손이 두 배는 커 보이는 아이들이 앙증맞은 송편을 만들기 위해 진지한 표정으로 반죽을 다뤘다. 재료 손질부터 반죽, 소 넣기, 찌기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했다

A 학생(남·18)은 덩치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꽃모양을 곱게 얹은 송편을 만들었다. 친구들은 이 학생을 “셰프”라고 불렀다. 요리사가 꿈이라는 이 학생은 소년원을 나가면 자기 레스토랑을 차릴 것이라고 했다.

보호소년들이 자기가 만든 송편을 서로에게 먹여주고 있다. 전주=박태근 기자 ptk@donga.com
보호소년들이 자기가 만든 송편을 서로에게 먹여주고 있다. 전주=박태근 기자 ptk@donga.com

찜기에서 송편이 익어 나오자 학생들은 환호했다. 무뚝뚝한 또래 남학생들이 서로 먹여주는 모습은 현실감마저 잊게 했다. 임춘덕 교무과장은 “추석을 통해 협력과 나눔을 배우고, 정서적 교감을 통해 공동체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편 빚기 외에도 윷놀이, 합동 차례, 제기차기, 투호, 장기 등 전통놀이가 연휴 동안 이어졌다. 화상을 통한 가족 면회 시간도 마련됐다. 가족을 만나지 못한 B 군(18)은 “비록 가족은 못 봤지만 선생님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가족과 함께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행석 원장은 “보호소년들이 가족과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정서적 안정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직원들의 헌신과 학생들의 참여로 모두가 따뜻한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가족애 느끼게 하는 게 참된 교화”
전주소년원이 ‘모범 시설’로 평가받는 이유는 아이들의 변화를 이끄는 교사들의 헌신 덕분이다. 임춘덕 교무과장은 아이들의 마음을 열려면 목소리보다 마음의 온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고함 없이 변화를 이끄는 발성법’, ‘냉각 시간 부여’ 같은 지침을 직접 만들어 운영 중이다.

보호소년들이 교사와 함께 마른 땅에 심은 꽃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꽃을 피운 모습.
보호소년들이 교사와 함께 마른 땅에 심은 꽃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꽃을 피운 모습.

이를테면 학생들 간에 싸움이 났을 때 그 자리에서 교사가 화를 내면 오히려 아이들은 더 분노를 표출하거나 대든다. 이때는 호실 밖으로 조용히 불러내 냉수 한잔을 건네주고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준다. 학생이 진정되면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이유를 들어보고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본다.

임 교무과장은 “그 나이 때 아이들은 소위 ‘가오’가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타이르면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더욱 위력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잠시만 시간을 주면 스스로 차분해진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전공은 교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특수교사, 정신건강 임상 심리사 등 다양하다.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기 위해 자원해서 온 교사들도 있다.

한 학생은 “프로그램이 많다 보니 뭔가 안 좋은 생각이나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미래도 조금씩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가정 환경이 불우한 친구들이 있는데, 선생님들이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신다. 담임 선생님은 엄마, 당직 선생님은 아빠 같다. 엄할 땐 엄하면서 따뜻할 때 따뜻하게 대해주신다”며 “내가 처음에 왔을 땐 반항심이 있었는데, 여기 온 후로 ‘어른들이 나를 무조건 나쁘게만 보는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생활지도계장 송철진 씨는 “32년 동안 일하면서 느낀 건 어른은 잘 안 바뀌지만, 아이는 금세 달라진다는 것”이라며 “나무가 어릴 때는 손길대로 자라듯, 마음을 쓰면 변한다”고 말했다.

물론 잘못을 하면 징계를 내리고 엄하게 꾸짖지만, 잘 했을 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송 계장은 “친구를 때린다든지 이럴 땐 엄하게 혼내지만, 아이들과 벽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이 ‘선생님 저하고 상담해 주세요’라며 부담없이 다가온다. 선생님들은 ‘그래 그래’ 하고 다독여준다”고 전했다.


임 교무과장은 “결국 교화의 핵심은 가족애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에서 아이 키우는 것과 똑같아요. 아무리 혼내더라도 마지막엔 꼭 긍정 메시지를 줍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너를 믿는다’, 또는 ‘선생님이 너 믿었는데 실망했어’ 이런 말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금세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죠.”

그는 “직원들이 휴일에도 나와 아이들과 함께 송편을 빚고 하루를 보내며 부모 이상의 정을 나눈다”며 “보호 기간이 끝나 소년원을 나서는 날, 아이들도 교사들도 눈물을 보인다. 아이들이 ‘나가서 성공하면 아메리카노 한 잔 사드릴게요’라고 말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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