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범죄 피해자에게 묻다] 〈3〉 천정부지 치솟는 법률 비용
경제적 부담에 직접 고소했다 실패
이의신청 경우엔 수임료 더 올려… 사건 ‘핑퐁 수당’ 표현 생겨나기도
사법절차 복잡… 변호사 비용 증가
부담 줄이는 방향 제도개혁 절실
지방직 공무원 김민아(가명) 씨는 지난해 1월 중고차 거래 사기를 당했다. “해외로 나가야 해 급하게 차를 처분해야 한다”는 판매자 측 말만 믿고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인 600만 원에 차량을 샀다. 뒤늦게 자동차등록원부를 떼어 보니 압류·저당이 걸려 있었다. 결국 채권자인 금융사가 차량을 가져가면서 김 씨는 차량도 돈도 잃었다.
● ‘배보다 큰 배꼽’ 된 법률 비용
김 씨는 사기죄로 상대방을 고소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간 변호사 사무실에서 “고소대리는 부가세를 포함해 최소 550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안내받았다. 차량 가격에 맞먹는 변호사 비용이 부담스러웠던 김 씨는 어깨너머 배운 법률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고소장을 작성했다.
역부족이었다. 올해 초 ‘증거 부족’으로 경찰에서 불송치 결정을 받은 것이다. 김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의신청 제기를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기존에 제시한 착수금보다 220만 원 오른 770만 원을 수임료로 제시한 것이다. 변호사 측은 “경찰 수사 종결 이후 이의신청 건은 원래 별도 절차로 분류돼 추가 비용이 든다”며 “검찰이 불기소할 경우 항고할 수 있는데 그땐 220만∼33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의신청을 낸 김 씨는 “사기당한 돈을 찾으려고 고소한 건데 결국 차량값보다 변호사 비용을 더 쓴 꼴”이라며 “피해자에게 ‘웬만한 사기는 그냥 참으라’고 강요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 그물망처럼 변한 사법 절차에 피해자 부담
범죄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할 법률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건 한층 복잡해진 형사사법 절차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개시부터 종결에 이르기까지 이의신청과 보완 수사 등 1, 2차 수사기관 사이에서 오가는 절차가 한층 복잡해졌다. 이에 범죄 피해자는 1, 2차 수사기관이 어떻게 사건을 처리하는지, 어느 단계에서 어떻게 처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게 됐다. 형사 사건 전담 이민형 변호사는 “평생 수사기관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평범한 시민이 어느 날 갑자기 범죄에 연루됐을 때 혼자서 대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개별 계약으로 진행되는 탓에 변호사 선임 비용을 집계한 국가 통계는 없다. 하지만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2023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민사 사건을 소송대리한 건수는 11만3178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4% 늘었고, 소송가액은 7조9313억 원으로 40.5% 폭증했다. 형사사건 소송대리 건수 역시 1만4725건으로 5.5% 늘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매년 소송 건수와 규모가 커지고 있는 탓에 개별 사건의 평균 비용 역시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수사 지연으로 인해 법률 비용이 늘어났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보완 수사 요구 사건은 지난해 10만 건을 넘어섰다. 지난해 검찰에 송치된 77만8294건 중 10만4674건(13.4%)이 보완 수사 요구 사건으로, 8건 중 1건이 다시 1차 수사기관으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조금이라도 나은 법률 서비스를 받으려면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인식도 늘어가고 있다. 사업 거래처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유철현(가명) 씨는 “보완 수사 요구 등으로 수사 기간이 늘어나면 변호사는 한 사건에 집중을 못 하게 돼 있다. 적절한 때에 격려금을 또 내야 한다”는 동료 사업가 말에 변호사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이로 인해 변호사 업계에선 수사기관끼리 사건을 주고받게 될 때 추가로 청구하는 비용을 뜻하는 ‘핑퐁 수당’ 같은 은어까지 생겨났다. 한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는 “변호사 사무장들 사이에선 사건 신속 처리 명목으로 ‘급행료’를 받거나, 피고인에게 사건을 유리하게 종결시켜 주는 ‘사건 꺾기’, 전관 변호사를 서류상으로만 이름에 올리는 ‘표지 갈이’ 비용을 암암리에 별도로 받고 있다”며 “최근 형사사법 체계가 복잡해지면서 기본 수임료에 추가되는 비용도 천차만별로 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열린 ‘범죄 피해자가 바라는 검찰개혁 세미나’에서 안지희 변호사는 “현행 제도는 ‘검사의 사건 기록 재검토’를 법률 시장의 먹거리로 전락시켰고 그 피해는 범죄 피해자와 억울한 가해자(피고발인) 등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 “적은 비용으로 신속 구제 가능해야”
검찰청이 폐지되는 내년 10월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이 신설된다. 검찰청 한 곳에서 담당하던 업무가 2개 신설 부서로 쪼개지면서 각종 절차가 한층 복잡해질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법률 비용도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을 지낸 김원용 변호사는 “사건 불복 절차가 늘어날수록 수임료만으로 일괄 처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단계별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복잡해진 수사 절차 탓에 전관 비용만 늘어났다고 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예전엔 ‘검찰 전관 변호사’만 잘 만나면 됐는데, 수사권 조정 이후엔 ‘경찰 전관 변호사’ 시대가 됐다”며 “1차 수사기관 조사 단계에서부터 변호사에게 돈을 많이 써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법 서비스 이용자 관점에서 불필요한 법률 비용이 늘어나지 않도록 형사사법 체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검사 출신 김은정 변호사는 “피해자 입장에서 절차를 이해하거나 접근하기 쉽고, 적은 비용으로도 신속히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형사사법 절차가 재편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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