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심의 과정과 결과 존중해야…의료인력 추계위, 졸속 설립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6일 14시 08분


“실제 결정은 행정부와 의회에서 날 일이다. 대신 정부는 심의 과정과 결과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설치에 관한 공청회가 14일 열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 진술인으로 추천한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은 12일 본보와의 사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기존 의료계는 추계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결이 다른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안 원장은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을 맡았다. 12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안 원장은 추계위가 2026학년도 정원 논의만을 위해 졸속으로 설립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추계위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12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진행된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과의 인터뷰. 안 원장은 이날 추계 과정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조했다.

―추계위가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가.

“우리 사회에서 의대 정원을 늘릴 때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는지, 표준 절차를 합의한 게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의사 수를 축소할 때는 말썽이 없었다. 당시 의대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1997년도쯤부터 이어갔다. 그 결과 2006년까지 의대 정원을 약 400명 줄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지난해처럼 사회적 혼란이 없었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사태는)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치기 전 정치적으로 증원 문제가 다뤄져 발생한 일이다. 표심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정책을 내보내니 황당한 근거만 나오며 투명성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과정에서 투명성을 보장하나.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의사수급분과회(분과회)는 회의록을 녹음본 수준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한다. 영국 또한 의과대학협회(MSC)가 독립적인 단체로 객관적인 관점에서 의사 수요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추계 과정과 결과를 공개적으로 발표한다. 보고서를 써내기도 한다. 네덜란드도 의료인력수급추계기구(ACMMP)가 3년 주기로 12~15년 의료인력 수급을 전망하는데 보고서, 조직 운영 및 예산 등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국민이 초기부터 내용을 알 수 있도록 민주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들을 평가하자면.

“아직 논의가 설익었기에 여전히 ‘관(官) 주도적’이다. 지난해 의대 정원을 결정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는 장관과 차관이 들어간다. 공정성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전문기구가 있더라도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최대한 투명하고 중립적으로 운영된다. 정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예산과 법령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미국, 영국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될 때 정부의 존재를 느끼기가 힘들다.”

―추계위는 심의·자문 기구여야 할까, 의결 권한을 지닌 기구여야 할까.

“전문기구에 의결 권한을 주는 건 괜찮다. 다만 실제로 최종 결정은 예산 등을 고려한다면 행정부와 의회에서 결정이 날 일이다. 희망 사항을 얘기할 수 있어도 말 그대로 하기가 쉽지는 않다. 대신 심의 과정에서의 결과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사실 그보다는 최종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투명하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건 정치와 행정의 민주화에 관한 문제다.”

―추계위의 적정 인력 비율은.

“전문성을 고려한다면 의사, 치과의, 간호사 등 직역별로 필요 인원을 추계하는 게 낫다. 정부 인사들이 위원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대신 정부측 인사도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다. 인원 비율은 현장 전문가에게 3분의 2, 나머지는 통계학자, 교육학자 등으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추계위를 통해 2026학년도 정원을 결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 중이다.

“2000명 증원을 결정했듯 졸속으로 기구를 만들면 안 된다. 시간을 갖고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다. 정책을 익히고 나서, 그걸 정치의 장으로 끌고 가야 한다. 시범사업이나 사업성과 평가를 거쳐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미다.”

―추계위가 실제 필요한 의사 수를 추계한다면, 어떤 변수들을 고려해야 할까.

“방정식에 대해서는 비전문가다. 다만 과거 호주가 추계기구를 만들었다 예산문제로 이를 없앴다. 그때 기록물 중 하나에서 ‘경제성장률이 2%대일 때는 의사 수를 늘리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의료비는 소비에 따라 재생산을 기대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다. 한국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만큼,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역의료 공백 등 의사 부족 문제도 계속해서 조명되고 있다.

“의사와 병원을 늘려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비수도권 인구가 줄어들면서 도시가 소멸하고, 인프라도 같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 다른 보건의료 인력도 비수도권으로 가려 하지 않는 상황이다. 외과 전문의 한 명이 가더라도, 마취과 전문의가 따라와야 하고, 간호 인력, 의료기기 등 전반적인 인프라가 함께 따라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우리나라는 의료 수요를 추계해야 할까.

“우리나라 의료에 대한 기본적인 형태에 대한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원칙을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 권역 여부, 전공의 양성 책임, 병원의 초과이익 한정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보정심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어떤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밀고 나갈 수 있는 이념적 기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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