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 사직 행렬-진료 축소 현실화… “정부에 속아선 안돼” 강경론 우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5일 1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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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교수연구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정부의 입학정원과 정원배정 철회가 없는 한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며 오늘부터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과 주52시간 근무, 외래진료 축소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25일 오전 7시 반. 고려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 교수들은 의사 가운을 입고 흰 봉투를 든 채 각 병원을 연결해 온라인 총회를 열었다. 고려대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잘못된 의료 정책과 정원 확대 추진을 철회하고 (대화) 협의체를 구성하라”고 요구한 뒤 각 병원 총회장에 마련된 수거함에 사직서 봉투를 넣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 전국 대학 14곳에서 사직서 제출 릴레이

이날 전국 의대 교수 상당수는 예고한 대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주 52시간 근무’ 등 진료 축소에 들어갔다. 일각에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중재 시도로 타협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지만 ‘2000명 증원’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정부와 ‘2000명을 철회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의사단체는 막판까지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총회를 마친 후 “오늘(25일)부터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방재승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조사에서 교수 1400여 명 중 900여 명이 답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다”며 “상당히 많은 교수들이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교수들도 이날 오후 사직서를 취합해 이은직 의대 학장에게 제출했다. 지방에서도 사직 행렬은 이어졌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의대에선 교수가 10명인 과에서 8명이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 충남 순천향대는 93명, 충북대는 50여 명, 대전 건양대는 10여 명이 사직서를 냈다. 오후 8시 기준으로 교수 집단 사직서 제출이 시작된 곳은 전국 의대 40곳 중 14곳에 달한다.

이날 전국의대교수 비대위(비대위)에서 공개한 사직 결의에 의대 19곳이 이름을 올린 걸 감안하면 집단 사직에 동참하는 의대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김창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은 “(사직서를 내기로 한 의대가) 거의 대부분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사직서 제출 후 당분간 병원을 떠나지 않는 대신 주 52시간 내에서 외래진료, 수술, 입원진료 등을 유지할 방침이다. 또 다음 달 1일부터는 외래진료를 최소화할 계획이다. 비대위는 이날 성명에서 “파국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교수직을 던지고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 교수단체 “백지화 요구 ‘증원 0명’ 아냐”

다만 의사단체는 증원 숫자가 조정된다면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김 회장은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서류상 만들어진 숫자에 불과하다는 게 전의교협의 일관된 입장”이라면서도 “백지화가 ‘0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전의교협 조은정 비대위 홍보위원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 유예는 말이 안 되고 취소해야 한다”며 “취소한다면 (대응도)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교수들이 너무 힘들어 외래진료를 축소하기로 한 것”이라며 “전공의가 돌아와야 진료 축소를 버릴 수 있다. 이제 조만간 돌아가시는 분도 나올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과 박민수 2차관을 언급하며 “특정 직군을 악마화시키는 것은 최고경영자라면 바로 해고할 사안”이라며 교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정부와의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국민들에게는 쇼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뒤로 의사들을 압박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정부와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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